필자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해외에서 처음 투표를 해 보았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살다보니 평소 한국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그다지 밝지 못해 관심도 적었다. 정당들도 자주 변하고, 이에 따라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너무 잦아 한국 정치에 대한 지식이 제대로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주요 대통령 후보들의 정치 이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인물, 정당, 정책 등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다보니 스스로 판단 기준이 분명치 않았고, 그래서 투표 참여를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투표에 참가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인터넷을 통해 인물들에 대해 공부도 하고, TV토론회도 짬짬이 보았다. 필자는 결국 원하는 후보를 결정했고, 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인물을 선택했다. 필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한국 사회상에 대해 당시 문재인 후보가 뚜렷한 입장이나 정책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있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고대했던 새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한국은 희망과 설렘이 가득한 분위기다. 스스로 지지한 후보는 아니었지만, 필자도 다른 많은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대통령의 취임사는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바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그 문구 때문이었다. 이 선언을 통해 새 대통령은 분명히 다수 국민들의 열망에 제대로 접속해 있음을 확인했다. 과연 새 정부가 어떤 과정과 형태로, 그리고 어느 정도로 이 가치들을 실현해 낼 지 필자는 지켜볼 예정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것들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고 대중적으로 공감되었다. 국민들의 요구와 열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변화’였다고 본다. 

그럼, 무엇이 변해야 할까? 필자의 관점은 그것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정권 교체와 민주정부 수립이었다. 지난 10여년 간 보수 정권의 집권으로 한국 역사는 크게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고, 박근혜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탄압과 군림을 일삼는 유사 독재정치체제를 구축하여 공들여 쌓았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사실상 붕괴시켰다. 두 정부는 역사를 되돌려 또다시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정부 수립을 열망케 했다. 이제 정권교체는 실현되었고, 진정한 민주정부가 잉태되리라는 기대 속에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새 정부는 국민들이 다시금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낡은 구호를 외치지 않도록, 탈권위와 권력 분산 실현을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한 기틀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두번째는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이었다. 정부 권력과 감찰 기관, 그리고 경제 권력 간의 협작, 밀실, 야합, 조작 등의 구시대적 정치 관행과 행태는 한국 정치의 대명사다. 선거 과정에서도 구시대 정치는 계속되었다. 지역주의, 세대주의 그리고 색깔론 등은 여전히 통하는 선거 전략이었다. 정책적인 준비는 전혀 없이 편가르기 작전으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후보와 정당, 정치적 사명감과 소신은 없고 오로지 권력 유지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철새 정치인들, 남북 대결과 긴장 관계를 부추겨 안보 불안증을 권력 창출의 수단으로 삼는 정치인 등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관행을 깨야 한다. 새로운 정치 전형 구축의 주요한 요소에는 반드시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과 전략, 그리고 미국 의존적 외교에 대한 재검토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종북’ 혹은 ‘빨갱이’ 등의 이념적 문구에 기생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사라지고, 건설적인 토론 정치가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시대 교체에 대한 열망이었다. 이번 정권 교체 과정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분명 적폐 청산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구시대와의 결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득권 세력과의 완전한 결별, 더 나아가 기득권이 창출되는 구조를 근원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권력, 부, 그리고 명예가 서로 붙어 다닌다. 소수 특정 집단, 더 구체적으로 정치인, 법조계, 재벌, 의료계, 학계 등은 독자적으로 혹은 서로 연합하여 권력, 부, 명예 등 모든 자원들을 집중 소유하고 있다. 자원 분산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 체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가진 이들만이 참여하는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는 기득권을 재생산할 뿐이다. 사회적 대화 체제를 다시 구축하여 그동안 정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던, 그리고 권력의 수직관계에서 언제나 아랫 부분을 구성해 왔던 이들의 목소리가 균형있게 반영되어야 한다. 단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수준의 소통은 충분치 않다. 사회적 대화 체제는 국민과의 소통 수단을 넘어서서 구속력이 있는 제도로 실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정권 교체와 새 정부 탄생만으로도 성취한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정권교체는 엄밀히 말해 새 정부의 업적이라기보다는 부패하고 무능하고 오만한 정부에 분연히 맞서 새시대 창출을 열망한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정권교체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새시대로 도약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새정부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 ‘ 실현이라는 궁극적인 정권교체의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새 리더쉽을 보여주어야 한다. 새로운 리더쉽은 강력한 국가 권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폐 청산이라는 구시대와의 단절을 위해서 국가는 때로는 카리스마틱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편적 복지체제 구축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국가는 더 강한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러나 새 정부가 앞으로 진정한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을 시민사회와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종국에는 시민사회가 국가 권력을 견제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결국 건강한 정부를 견인할 유일한 세력은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로의 권력 분산을 새 정부의 국가 전략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이 국민주권 실현의 단초이며, 새시대가 요구하는 정치 패러다임일 것이기 때문이다. 

구시대 청산과 새 시대 창출을 새 정부가 한꺼번에 완성해 주길 바란다면 새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일일 뿐더러 비현실적인 기대일 것이다. 개발독재, 정경유착, 반공 이데올로기 등 적폐로 표현되는 구시대 유물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지만 장기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적어도 한 세대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요할 수도 있다. 더 이상 가지고 있고 싶지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의 일부로서 살아와서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하기에 새 정부는 새 시대 완성이 아니라 새 출발을 위한 기반만이라도 제대로 조성해 준다면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한 것으로 본다.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기 하기보다는 진정한 밀알이 되어 주길 바란다.  내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 준 새 대통령의 사회상이,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물이 되어 주십사, 새 정부에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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