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체성 통합 및 정체성 전략
 
1) 정체성 및 정체성 전략
- 문화변용(acculturation) 개념에 기초한 해외 한인 연구 다수 존재한다. 문화변용은 두 가지 독립적인 문화가 접촉하여 발생하는 변증법적인(dialectic) 상호작용을 의미하나, 실제 대부분의 연구는 문화적응(cultural adaptation) 혹은 문화동화(assimilation) 등 선형적(linear) 혹은 일방적인(unilateral) 관점을 적용한다. 
 
- 정체성이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기표현(self-representation)으로서 ‘나’ 혹은 ‘우리(us)’와 ‘그들(them)’ 사이의 경계 설립를 통한 자기 차별화(self-differentiation)를 의미한다. (La Barbera, 2015). 정체성 통합은 개인이 집단 혹은 사회에 가지는 소속감의 정도와 관련되며, 이민 맥락에서는 이민자가 스스로를 이민국의 민족 혹은 시민으로 자기를 규정하는 상태다. 정체성 변화는 문화적응보다 더 깊은 자아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정체성 변화없이 문화적응이 가능하다. 
 
이민자 정체성 전략 모형
- 이민자 정체성 전략: 모국 정체성과 이민국 정체성을 두 축으로 하여 네 가지 정체성 전략을 범주화했다. (Berry, 2001). 이민자가 두 정체성을 동시에 강하게 확보하고 있으면 통합(integration), 두 정체성 모두를 부인하면 주변화(marginalization), 모국 정체성이 강하고 이민국 정체성이 약하면 분리(separation), 그 반대이면 동화(assimilation)로 규정한다. 
 
이슬람테러 확산.. ‘동화주의’ 부활
 
2) 현재 호주의 다문화주의 풍토
- 다문화주의는 채택 시점부터 끊임없이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었다.
- 동화주의의 부활: 최근 반이슬람주의에 편승하여 백호주의 재득세 및 반다문화주의 정서와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 ‘팀 오스트레일리아 (Team Australia)’에 가입 강요: “Everyone has got to be on team Australia. Everyone has got to put this country, its interests, its values and its people first, and you don't migrate to this country unless you want to join our team." (Tony Abbott, former Prime Minister: 2013 - 2015)
 
- 핸스니즘 (Hansonism)에 대한 사회적 지지: “We are in danger of being swamped by Muslims who bear a culture and ideology that is incompatible with our own, …indiscriminate immigration and aggressive multiculturalism had caused crime to escalate and social cohesion to decline, and said too many Australians were now afraid to walk alone in their neighbourhoods at night.” (Pauline Hanson, Founder and leader of One Nation Party)
 
- 호주 시민권 테스트에 호주인의 가치(Australian values) 심사 강화: "Membership of the Australian family is a privilege and should be afforded to those who support our values, respect our laws and want to work hard by integrating and contributing to an even better Australia." (Malcolm Turnbull, Current Prime Minister)
 
- 비백인 이민자들에게 ‘호주 사람 되기 (being Australian)’ 과정을 가속화하여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서둘러 체화하기를 요구한다. 새 정체성 체득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동화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호주 거주 자격이 없음을 암시한다. 
 
이민자 정체성 장기간 이주하며 서서히 변화
 
3) 호주 한인들의 정체성 전략
- 호주 한인들의 호주 정체성 체득 정도를 측정했다.
- 측정: 5점 척도를 이용하여 ‘나는 나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본다’와 ‘나는 나 자신을 호주인이라고 본다’는 두 진술에 대한 동의 정도를 질문했다. 
- ‘분리’ 전략이 지배적: 베리의 정체성 전략 모형 적용 결과, 대부분의(69.3%) 한인 이민자들은 모국 정체성은 높고 이민국 정체성은 낮은 ‘분리’ 전략을 채택. 그 다음으로 한국인과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유한 ‘통합’ 전략 채택 (19.0%)했다.
          
한인 이민자 정체성 전략
- 점진적 정체성 통합 및 복수 정체성 보유 가능성: 호주 한인들이 모국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호주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에 있어 완전히 저항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인 2세대 정체성 전략 (좌: 1.5세대, 우: 호주태생 2세대)
- 세대간 차이: 1세들과는 달리 2세대인 경우 분리 전략이 지배적이지 않으며, 통합과 동화 전략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2세대 역시 한국인 정체성은 여전히 강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 시사점: 이민자들은 두 정체성 중의 하나를 배타적으로 채택하지만은 않으며, 다수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민자들의 정체성은 단기간에 변형(transform)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전(transition)하면서 변화한다는 교훈을 준다.
 
 
“문화.정치적 통합, 호주인 정체성발달 주요 변수”
 
4. 호주인 정체성 발달 영향 요인
1) 가설
- 호주 한인들은 동일한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민 결정, 정착 및 문화적응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different acculturation trajectories) 보유한다.  
- 정체성 재구성은 전적으로 개인의 생애 경험(life-course experience)과 인구학적 특성의 영향에 의해 차별적으로 진행된다.
 
2) 분석모형
- 크게 두가지 범주의 독립변수 설정: 하나는 경험변수로서 개인의 사회통합 정도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이다. 사회통합 정도에는 4가지 주요 분야별 사회통합도가 변수로 활용되었으며, 사회인구학적 특성에는 성, 연령, 교육수준, 소득수준, 종교 (기독교 여부), 시민권 지위, 영어 구사 능력, 그리고 거주기간 변수가 포함된다. 
 
분석 모형
- 사회인구학적 변수들은 주로 ‘어떤 사람이 호주인인가(what it is to be Australian)?’라는 주제로 수행된 기존 연구들에서 논의된 변수들로 구성됐다.
- 분석 방법
• 상관관계 분석: 4개의 사회통합 분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합도)
• 회귀분석: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종속변수로 설정
 
3) 분석 결과
- 상관관계 분석
•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모든 사회통합 구성요소들과 긍정적인(positive) 상관관계가 있다. 긍정적인 사회통합 경험이 많을수록 호주인 정체성이 발달한다. 
 
• 문화 및 사회적 통합이 경제 및 정치적 통합보다 호주인 정체성과 상대적으로 더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 회귀분석 
• 사회통합 구성요소들과 호주인 정체성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회귀분석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회인구학적 변수들의 영향에 기인). 경제 및 사회적 통합도는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문화 및 정치적 통합이 호주인 정체성 발달에 유의미한 변수였다.
 
• 사회인구학적 변수 중에서는 시민권 지위, 영어 구사 능력, 그리고 거주 기간이 호주인 정체성 발달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 특히, 시민권 지위는 호주인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시민권 보유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Nickerson, Steel, Bryant, Brooks, & Silove, 2011) 당연한 결과다. 특히 호주에서 시민권 보유는 참정권 보유를 의미하며, 이는 정치적 통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변수는 영어 구사 능력이다. 언어 능력이 개인의 사회통합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흔하게 발견되는 연구 결과다. ‘언어장벽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고용 확보, 그리고 지역사회 참여 및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요인 (McDermott & Odhiambo, 2010, p. 113)이다. 언어 능력은 호주인 정체성 발달을 촉진하는 요인임이 확인됐다.
 
•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수 중에 설득력이 가장 낮지만 가장 특기할 만한 의미를 지니는 변수는 거주기간이다. 분석 결과, 거주기간이 길어질수록 호주 정체성이 더 감소했다. 다시 말해 호주에서의 장기 거주가 반드시 호주인 정체성 발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착 및 거주 과정에서 호주 사회로의 통합 노력이 좌절된 경험 그리고 사회적 배제의 누적된 경험이 호주인 정체성 발달을 저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단, 거주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인 정체성이 더 뚜렷해진다는 의미는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5. 결론 및 정책적 제언
1) 연구 결과 요약
- 분석 결과는 사회적으로 통합된 사람일수록 이민국 정체성 발달 가능성이 높아짐을 시사했다. 즉, 사회, 경제, 정치 및 문화영역에서 참여 기회를 많이 가지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많이 경험할수록 호주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일치감이 상승했다.
 
- 반대로 사회적 소외감 및 배제 경험은 정체성 발달을 저해, 한인 이민자들의 경우 거주 기간동안 누적적으로 경험한 중첩된 사회적 배제가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 발달을 좌절시키는 결과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민자들에게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빨리 호주 사람이 되라고 압력을 가하면 정체성 저항이라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2) 이론적 시사점
- 호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다음 다섯 가지 자질을 구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호주에서 태생, 호주 시민권 보유, 생의 대부분을 호주에서 거주, 영어 구사, 그리고 기독교 (Jones, 1997).
 
-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적용해 본 결과, 호주 태생, 시민권 보유, 그리고 영어 구사 능력은 호주인 정체성 발달을 촉진하는 요인들로 확인됐다.
- 기독교일수록 호주인 정체성 발달의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나, 이 주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론적으로 거주 기간이 길수록 현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체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하지만, 한국 이민자의 경우 반대 경험을 나타냈다. 이는 거주 기간의 양적인 요인보다는 거주의 질적인 요인이(이민국 사회와의 상호작용 방식) 이민국 정체성에 더 주요한 요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3) 정책적 시사점
- 호주 사회 및 호주 정부에 주는 시사점
• 동화주의에 입각한 상명하달식(top-down) 정체성 변화 전략은 실효성이 없는 사회적 배제 전략이다. 정체성 통합은 위로부터의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성취가 불가능하다.
 
• 다문화주의가 여전히 이민자들의 정체성 통합을 촉진시키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이민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지원들이 증가할수록 이민자들이 호주사회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결국 이민자들이 더 빨리 호주사람으로 변화한다.
 
• 언어 장벽은 사회통합의 근원적 장애 요소다. 언어 구사력 향상 지원 등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자원 요인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 확대 요구가 필요하다.
 
- 한인 커뮤니티에 주는 시사점
• 사회통합은 개인 혹은 집단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더 근본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인정됐다. 따라서 한인 커뮤티니를 포함한 소수자 집단들의 사회통합 노력을 저해하는 호주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문화적 요인을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 그러나,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사회통합 노력 역시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소수자 집단, 고립된 취약 집단으로서의 이미지와 주변화된 위상 탈피를 위한 적극적인 자가 노력이 필요하다.
 
• 사회적 관계의 외연을 한인 커뮤니티 외부로 확장하고, 비한인 집단과의 상호작용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 한인 커뮤니티 대표 기관 및 단체의 역할과 사명 재정립: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 차원의 집단적인 사회통합 노력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주체가 없었다. 한인회 내에 가칭 ‘사회통합위원회’ 설립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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