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태과학계에서 잘 인용되는 ‘침묵의 나선형’(The spiral of silence, 螺線형) 이론이라고 불리는 독일학자 에리자베스 노엘뉴만의 학설이 있다. 나선형은 용수철이 위를 향하여 올라가게 되어 있듯 상승곡선을 말한다. 알다시피 영어로 ‘inflation spiral’은 계속 올라가는 물가인데 그런 표현 방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립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붉은 색종이를 보고 10명 중 9명이 희다고 우기면 나머지 한 사람은 입을 닫게 된다. 이 과정을 사회 전체에 적용한다면 잘못된 주장이나 이론이 득세하면 그쪽 소리는 더 커지고, 반대로 다른 쪽은 더 조용해져 그게 여론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왜 굳이 학설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알게 되는 상식을 여기에 소개하는가? 침묵의 나선은 여기 한인사회가 딱이라고 봐서다. 이 나선형은 모든 독재국가에서 있기 마련이고 고국의 군사정권 시절에도 그랬다. 그런 고국에서도 이제는 먼 과거 이야기가 됐으나 첨단 자유민주주의를 한다는 호주에 둥지를 튼 한인사회만이 그대로가 아닌가 한다.
 
한인사회는 작고 좁다고 하지만, 적어도 인구 10만은 타즈마니아의 2대 도시인 론체스턴 보다 더 많다. 그 도시를 가보면 규모가 생각보다 큰 것을 알게 된다. 일개 국가나 따로 도시를 이루고 있지 않지만 한인사회도 그 안에 아마도 수천 개가 넘는 단체, 기업과 교회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역동적인 집단이다. 거기에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크고 작은 이슈가 없다면 놀라울 일이다. 10여개가 넘는 신문.잡지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대로의 이슈 보도가 없거나 드물고, 있다 해도 독자들은 자기나 자기 단체만 건드리지 않거나 손해가 아니라면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면 건전한 발전은 불가하다.  
 
이런 침묵의 나선형 사회에서 지난 주 한호일보(8월18일자) 금요단상에 실린 기후 스님의 칼럼 ‘두번째 실패 - 코리안가든의 경우’는 가히 기록적이라고 생각한다. 내용과 관계없이 그의 관심과 성의와 과단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알려진 바대로 2천만불이 들고 후손들을 위해 꼭 남겨야 할 큰 사업이라면 왜 몇 년 동안 반대, 찬성, 또 다른 의견 등 어느 것이든 건설적인 신문 논평이나 구성원의 발언 하나가 없는가? 건전한 토론의 광장 문화가 없는 증거다.

시장조사가 관건 

 차제에 필자 개인의 의견을 피력해보려고 한다. 코리안가든의 이상(理想)을 반대하지 않는다. 무궁화 꽃 동산에 근사한 한인회관, 한국문화예술회관과 부속 건물들이 줄줄이 세워져 잘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상이 아니라 실물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판단 기저(the bottomline)다. 그 기저는 세 가지, 첫째는 법적 또는 절차적 가능성(legal feasibility), 둘째는 기술적 가능성(technical feasibility), 셋째는 상업적 가능성 (commercial feasibility)이다.
 
스트라스필드 카운슬이 불가 결정을 했다는 건 법적. 절차적 가능성의 문제다. 보도된 대로 앞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둘째 기술적 가능성은 돈만 있다면 문제가 안될 것이다. 마지막도 역시 돈인데 그 돈은 한번이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코리안가든은 공익 프로젝트일지라도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기업적 성격이다 (만약 아니라면 알려주기 바란다). 이 점은 카운슬이 관리 운영하는 고스포드와 어번과 타스마니아의 재패니스가든과는 다르다. 이들 가든은 오래 전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간 또는 정부간  합의로 호주 쪽 시(市) 예산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우리도 한다면 그런 방안은 불가능할까? 
 
약 5년 전 런던에 가 있을 때 안 것이지만 영국한인회가 한인회관 건립자금으로 미화 20만불을 한국 정부로부터 받았다. 코리안가든 건립에도 한국 정부나 다른 기관, 단체, 개인으로부터 얼마만큼의 재원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경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체 운영이어야 할 사업의 성공 조건은 시장성이다. 구멍가게 하나를 낼 때도 그 앞에 사람이 얼마나 지나다는지, 길거리는 어떤가를 조사해본다. 새 시드니 한인회는 코리안가든 프로젝트 사업을 떠 맡았거나 동참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긴급한 과제는 시장조사(market research)라고 생각한다. 
 
장기 임대로 입주한 현재의 크로이돈파크 시드니 한인회관이 문을 열 때 당시 한인회 부회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임대로 벌게 되는 수입으로도 앞으로 한인회장은 돈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인회 예산이 없어 회장마다 ‘내 돈 썼다’는 이야기는 여전하다
 
그간 코리안가든 사업에 대한 추진 경과 발표가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그 벌판에 뭘 팔아서 그리고 어떤 임대 수입으로 자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게 설득력이 있어야 모금 운동이 잘 될 것이다.   
나는 한인사회 안 토론의 광장 문화의 조성을 위하여 신문의 ‘독지의 편지’난에 많은 독자들이 참여할 필요성을 글로 여러 번 역설해왔고 손수 실천해 왔다. 이 글도 ‘독지의 편지’로 취급해달라고 편집자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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