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만큼 일 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삶의 가속도가 붙는 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올빼미 과인 잠버릇은 늘 몸을 피곤하게 만든다. 맡은 모든 일들을 던져 버리고 잠자고, 맛있는 것 먹고, 소파에 누워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채널을 리모컨으로 휙휙 넘기고 싶은 홀리데이를 꿈꾸어 보았다. 그래서 봄방학을 맞으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부푼 마음으로 9월이 되기를 기다렸다.   

방학이 시작되기 한 주전에 특별한 이벤트가 학교에서 열렸다. 6개월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쳐서 시드니의 한국문화원에서 ‘찾아가는 문화원’ 이라는 프로그램을 퀸스랜드주에서는 처음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Ride the Korean Wave” 라는 주제로 현지 학교를 찾아가서 학생들에게 한류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한류문화를 호주사회, 특히 십대 청소년, 하이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보여주고 워크숍을 함께 한다. 태권도, 장구, K-Pop 댄스, 전통 공예품(한국 신발), 한식 클래스로 나누어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한국문화와 예술의 멋을 알리는 시간을 가져서 보람이 컸었다. 비록 하루 동안 열렸던 행사였지만 학생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던 9월의 이벤트였다. 다음날부터 이른 나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누적된 피로에 기침을 하면서도 개의치 않고 카톡으로 연락하며 맛집 찾아가기, 지방 여행계획 등을 세워 놓고 있었다. 한국의 성지도 방문하고 친분있는 신부님들을 방문해서 재회의 기쁨도 나누고 싶었다. 짧지만 소박한 나의 홀리데이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희망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3년 만에 가는 한국방문이라서 마음은 더욱 설레었지만 피로에 지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10시간에 걸친 긴 여행이 건강에 적신호를 던졌다. 기내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서울의 아들집에 도착한 이후로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기침과 온몸이 아픈 증상에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기침증세가 심각해지면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온몸의 기운이 다 소진된 듯 거동이 힘들어졌었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서울의 공기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다. 

나의 병원여행이 시작되었고 침대에 누워서 약만 먹는 외로운 홀리데이가 시작되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의원과 병원, 약방을 오가는 기막힌 여행에 기대에 부풀었던 나의 휴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추석이 눈앞에 다가오니 아파트 상가의 가게에 전시된 과일의 풍성함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미련하게 일했던 나의 일상이 톡톡히 경고를 받은 셈이다.   
내가 원했던 홀리데이 프로그램 중의 한 개는 이미 시작되었다. 약을 먹고 나면 소파에 누워서 졸린 눈으로 텔레비전의 수많은 채널들을 리모컨으로 돌려대는 것이다. 아들의 눈에는 오랜만에 방문한 엄마가 심한 기침에 끙끙대며 외출도 못하고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텔레비전 채널만을 돌려대니 참 딱해보였을 게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채널마다 다양한 드라마, 맛있는 음식소개, 쇼핑이 넘쳐나서 눈요기라도 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은 넘쳐나고 쇼핑채널을 보고 있으면 구매의욕을 팍 팍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홈쇼핑으로 한 번도 구매해 보지 못했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엄마한테는 정말 그런 홀리데이가 필요해요. 한약 먹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마음껏 보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아프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하느님이 주신 홀리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쉬어요. 엄마가 언제 그런 시간을 호주에서 가질 수 있겠어요?” 
하느님이 주신 홀리데이가 맞긴 맞는가보다. 나를 한의원으로 데려가주신 분도 수녀님이고, 한의원원장님도 한때는 수녀원에 계셨던 분이니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멀리서 휴가를 온 특별한 환자라면서 무료진료를 해주고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게끔 한약까지 지어주었다. 기운 내라고 삼계탕까지 사주셨던 원장님, 그녀의 후한 대접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다. 열흘 정도 지나니 밥 한 공기를 먹을 만큼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갈 날이 겨우 4일 남았으니까.

한국 사회는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에서 뉴스를 보면 남북한 사이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야단이다. 줄리 비숍 외무부장관의 인터뷰, 미국대통령의 발언이 이어져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학교의 선생들이 나에게 “한국에 지금 가도 너 괜찮니?” 라고 묻기도 했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엄마, 오버하지 말아요.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걱정할 거 없으니 맘 놓고 오세요.”  
신문에서는 한국 사람들의 사회인식 불감증을 걱정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는 한낮에도 데모하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었고 대치하는 의경들의 모습을 보았다. 

호주로 돌아오기 이틀 전에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삼청동에 있는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수십 대의 경찰 밴과 수백 명의 의경들이 길목마다 대열을 갖추어서 정렬해있고 무슨 애국 단(?)이라는 글자를 새긴 하얀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차안에서 깃발을 내리며 경찰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길이 막힌 덕분에 나무가 우거진 운치 있는 거리인 ‘청와대 로’를 지나서 도착 할 수 있었다. 한 끼의 식사를 하러가는 시간이 둘러서 가는 바람에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체험할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정권이 바뀌었는데 또 무엇을 시위해야하는지 난 또다시 테두리를 벗어나는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비록 국내여행도 가지 못했고 쇼핑도 못했지만 오기 전날 만나고 싶었던 신부님들과 재회하는 기쁨을 누려서 행복했다. 나눔과 비움과 채움을 경험하고 싶었던 나의 홀리데이는 약과 인연을 맺으며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죽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을 만큼 체력이 회복되었다. 사람은 살게 마련이가보다. 홀리데이가 맞긴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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