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4대은행이 지난 일요일(24일) ‘긍정적인 깜짝쇼’를 했다. 은행 고객이 다른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를 사용할 때 고객에게 부과하던 $2 수수료(ATM fees)를 전격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코먼웰스은행(CBA)이 가장 먼저 발표했고 다른 3개 주요 은행들(웨스트팩, ANZ, 내셔날호주은행)이 신속하게 뒤를 이었다. 일요일 이같은 발표를 한 것은 대체로 큰 뉴스가 없이 조용한 주말 오후 내내 주요 뉴스로 보도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ATM 수수료를 통해 은행은 연간 5억 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는데 이 수수료는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불만을 초래한 것 중 하나였다. 그동안 폐지 요청이 계속 제기됐지만 은행측은 완강하게 거부해왔다. 4대 은행이 이처럼 애지중지하던 ATM 수수료를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한 배경에는 여러 목적이 있다. 은행 이미지 개선을 통해 야당이 요구해온 금융권 의회특검(royal commission)을 피하기 위한 고륙지책일 것이다. 벌써부터 ‘의회특검 방지 꼼수’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코먼웰스은행은 호주 최대 은행이자 최고 주가를 자랑한다. 이런 양호한 기업 이미지가 최근 빅 스캔들로 손상되면서 더 이상 부정적인 은행 이미지는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코먼웰스은행은 여러 해 동안 5만5천건의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법 위법 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대형 스캔들이 터졌지만 이안 나레브 CEO는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다가 거센 비난을 받은 후에야 내년 6월말 이임을 발표했다. 일종의 징계 의미로 그와 다른 임원들은 2017년 보너스가 취소됐고 비상임 이사들의 연봉은 삭감됐다. 
위법에 대해서 기소가 될 것이고 이 스캔들로 주가가 하락하자 주주들이 은행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진이 문제를 은닉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여러 소송 외 호주금융감독기관인 APRA(Australian 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는 별도 조사를 할 계획이다. 조사 후 분명 강경 조치가 이어질 것이다.   
 
이번 스캔들은 은행 이미지 손상은 물론이고 주주, 고객들, 정치인들, 감독기관, 은행 직원들로부터 은행의 신뢰가 막장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피해의 파장이 더욱 커질 듯하다.  
몇 개월 동안 은행 내부의 직장 문화와 잘 못된 관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 뒤 처음으로  이사회와 최고경영자들이 고객 불만 중 하나였던 ATM 수수료 폐지로 행동을 취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또 여당이 의회에 상정해 통과가 유력한 은행임원책임제도(Banking Executive Accountability Regime: BEAR) 법안도 은행 입장에서 우려 사안이었을 것이다. 의회 청문회의 건의를 통해 추진된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2018년 7월 1일부터 은행 임원들의 책임에 대한 감독이 강력해진다. 위법 적발 시 벌금, 보너스 연기, 자격박탈 등 처벌이 강화된다.  
다음 달 의회의 경제청문회(House Economics Committee)가 열린다. 이틀동안 이안 나레브(코먼웰스은행), 쉐인 엘리오트(ANZ) 앤드류 쏜번(NAB), 브바이언 하처(웨스트팩)의 4개 은행 총수들이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금융감독 당국이 그동안 호주 금융권을 좌지우지하면서 위세를 떨친 4대 은행에 대해 너무 헐렁한 감독을 해 온 점도 이번 기회에 반성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4대 은행으로부터 ATM 수수료 폐지에 이어 신용카드 이자율과 연체 수수료(late payment fees)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수십년동안 소비자들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으니 그 중 작은 일부를 소비자들에게 돌려줄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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