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직접 입을 열었다. 이 전 대통령은 28일(목)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때가 되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이 난관을 극복하고 중단 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요즈음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의 정치개입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이른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고소로 검찰 수사가 다가오자 보인 첫 반응이다. 
MB 정부 시절 여론조작을 위해 국가 최고정보기관을 동원해 저급한 내용의 댓글들을 생산해 내고 심지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남녀 연예인의 알몸 합성사진까지 만들어 유포시키는 비열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21세기 민주국가의 국가기관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기 힘든 낯 뜨거운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반성은커녕 ‘적폐청산이란 미명 하에 일어나는 퇴행적 시도’라고 단정하고 나선 것이다. MB 정부 시절 정무 수석 등 측근들은 ‘정치보복’이라 우기며 막말과 교묘한 논리로 ‘물 타기’를 하고 있다.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말에는 MB가 검찰 수사망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저항을 할 것임을 동시에 예고하는 엄포인 셈이다. 친이 계열 정치인들의 공동 보조는 이미 시작됐다. 이런 그의 언행을 볼 때 물증 확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정두언 전 의원은 “MB가 굉장히 신중하고 약았다”고 말했다. MB는 기업인 시절부터 증거를 안 남기고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데 능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2조원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과 31조원을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거나 국고 손실을 끼친 ‘자원 외교’, 수천억 원에 달하는 무기 도입 의혹은 비리와 범죄 개연성이 높았던 사안들이었지만 의혹은 흑막에 가려진 채 그대로 묻혔다. 이유는 권력 감시기구가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후임자(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른바 4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었지만 별일 없었던 양 넘어갔다. 서로가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퇴행적 시도’라고 비판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적폐 청산은 퇴행이 아니라 역사의 순리이자 국민의 뜻”이라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한결같은 마음이고 지난 정권 교체 과정에서 국민의 요구는 적폐를 청산해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들다)하라는 뜻이었다”며 “이 전 대통령이 드러난 진실만으로도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할 사안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전면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의 순리와 국민의 뜻인지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76.2%에 달했다(매우 찬성한다 62.5%, 찬성하는 편이다 13.7%). 
반면 ‘반대한다’(반대하는 편이다 14.5%, 매우 반대한다 5.6%)는 의견은 20.1%에 불과해(잘 모르겠다, 3.7%)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만 ‘반대’(67.5%) 의견이 ‘찬성’(27.5) 의견보다 많았다. 이외 성별•연령•지역을 통틀어 이 전 대통령 수사에 찬성한다는 응답률이 더 높았다. 60대 이상(찬성 53.2% > 반대 37.4%)과 대구•경북지역(찬성 67.4 > 반대 27.3%)에서도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은 국가와 국민을 수탈한 자들과 부역자들의 과거 범죄를 제대로 벌하지 못했고 그런 악습과 부패 세력이 대대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런 서글픈 ‘단죄 부재’의 역사가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래에 발생할 범죄에도 용기를 줄 수 있다. 후손들이 역사를 보면서 배울 것이 없는 나라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와 재판은 공무원, 정보기관과 군 등 국가권력을 천박하게 추락시키며 역사를 후퇴시킨 자들에게 사회 정의와 법치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