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치권이 또 다시 연방 의원의 이중국적 문제로 혼돈 속에 빠졌다. 지난 주 이중국적 5인방의 의원직 상실에 이어 스티븐 페리 상원의장이 이 문제로 낙마하면서 이제 ‘헌법상 재난(constitutional calamity)’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주 뉴스메이커는 ‘이중국적 7인방(citizenship seven)'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5명 의원 자격 상실)이었고 이번 주는 스티븐 페리 전 상원의장이었다. 페리 전 상원의장은 1일 영국 시민권자)로 확인되면서 2일 상원의원 및 상원의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는 타즈마니아에서 출생했지만 작고한 부친이 영국 출생자라는 이유 때문에 ‘선천적 이중국적자’가 됐다. 호주 헌법(44조)에 이중국적자는 연방 의원 출마 자격이 없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페리 전 상원의원의 불찰은 “내 부모는 해외 출생자이니 이중국적자이겠지만 나는 호주에서 태어났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라는 방관적 태도였다. 의회 출마 전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외국 시민권자인 경우, 해외 국적 이탈(포기)을 신청해 깔끔하게 정리를 하지 못한 점이다. 이 취소 절차에는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린다. 또 국가별로 시민법 취소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복잡할 수 있다. 

호주는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과 일부 중동 국가들로부터 이민을 받았다. 부족한 노동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앵글로계 호주인들에게 모국(Mother Country)이었던 영국으로부터는 이른바 ‘텐 파운드 폼(Ten Pound Poms)’이라고 불리는 영국인 호주 이주장려정책(10 파운드를 호주 정부가 지원)을 통해 호주로 이민 온 사례가 많았다. 페리 전 상원의장 부친 가족도 이에 포함된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점은 영국의 복잡한 해외 시민권법이다. 많은 식민지 국가를 거느리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대영제국의 역사가 훗날 세대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본인도 아닌 아버지나 어머니가 영국 또는 영국 식민지 출생자라는 사실만으로 출생과 동시에 자녀 세대까지 영국 시민권이 이어지는 모순을 호주가 존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과거에는 그런 사례가 워낙 많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선천적 이중국적’ 이슈는 북미주와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의 한인 동포들에게도 친숙하다. 해외 동포 자녀들이 한국에서 취업 등으로 장기 체류를 하려다 한국내 병역법이 적용돼 느닷없이 입대를 해야 하는 서글픈 해프닝이 종종 발생했다. 
한국에 체류하던 미국 동포의 자녀가 갑자가 병역통지서를 받고 몹시 당황했다. 사정을 알고보니 미국에서 손주가 태어났다고 한국내 조부모가 자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호적에 올려 한국 국적이 취득됐기 때문에 한국에 있으니 병역통지서가 나간 것이다.  
여러 동포들이 이런 폐단을 시정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수십년 전부터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지 위해서가 이유다.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말콤 턴불 총리는 2일 “페리 상원의장처럼 이중국적이 의심되거나 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연방 정치인들은 스스로 공개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언이 어울린다.
 
이제 호주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국민여론 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려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동성결혼 합법화 찬반 국민투표가 11월 중 결론이 날 것이니 내년 새 회기에서 이 이슈를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주요 정당들이 마녀 사냥(a witch hunt)이란 비판을 하면서 의원들의 가계 조사를 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총선 때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 44조 개정을 국민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군소정당이 요구하는 상원 및 하원의원 전원에 대한 해외 시민권 보유 여부를 확인할 것인지 헌법의 독소 조항을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냥 아무 조치 없이 지나갈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 5인방과 스티븐 페리 전 상원의장처럼 제2, 제3의 선천적 이중국적자인 의원들이 또 나올 수 있다.

호주인 중 해외 출생자이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 출생자를 합치면 51%로 절반에 해당한다. 이런 이민 국가라는 특성을 갖고서도 헌법의 선천적 이중국적자 연방 의원 금지 규정은 모순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 이슈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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