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으로  들불처럼 확산

전 세계 26개국, 70개 도시 동포들 동참 
해외서 자발적•다양한 세대, 직업군 참여
“현지 사회 민권.사회운동으로 연계 노력 필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300여명의 어린 생명들을 기억하고 그 가족의 슬픔과 함께하는 마음이 광장에서 모였다. 그렇게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촛불이 최순실 농단사건으로 재점화가 되어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기까지.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해외에서는 26개국70개 도시에서 촛불이 활활 타올랐다. 

호주에서는 시드니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에서 많은 집회가 열렸다.

특히 시드니는 오세아니아 지역집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박근혜 구속과 한국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드니 한인행동’ 이 중심이 되어 2016년 11월 12일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첫 집회를 시작으로 2017년 3월 17일까지 총 8차례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국의 정치상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동포들이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충격 속에 ‘국가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자발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또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면서 좁은 동포사회에서 분열이 일어났던 부분 등은 호주도 다른 해외동포들처럼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의 시사 주간지인 시사인은 촛불집회 1주년 기념 특집호를 위해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13개 도시의 12명 및 1개 한인단체를 인터뷰했다.  시사인의 임지영 기자는 ‘당시 전세계 동시 집회를 기획한 자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해외에서 뜨거웠던 촛불 열기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서’ 특집기사를 기획했다. 임 기자는 한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해외거주 기간은 대체로 20여년 가까이 사신 분들, 집회 참여 경험이 거의 없던 분들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안정적으로 정착한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시드니 동포 김현정(혼스비 거주,  자영업자)씨는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해 난생처음 집회에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시작된 국가에 대한 의구심이 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극에 달했다. 저녁마다 진실이 무엇인지 남편과 토론했다. 마침 동포 신문에 집회 소식이 떴다. 일주일치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가게가 가장 바쁜 토요일에 열리는 집회였다. 

'안 가면 너무 부끄럽고 애들 보기 민망할 것 같아. 지금 어떻게 안 하면 세월호 진상 규명도 안 될 것 같아서' 42℃의 무더운 날씨, 기차를 타고 하이드파크로 갔다.  6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모인 사람들과 함께 큰 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집에 돌아올 땐 가슴이 벅찼다. 다음 집회를 앞두고 김씨는 용기를 내 혼스비 주민들에게 같이 가자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8차례의 집회에 한번도 빠지지않고 개근하며 자유발언을 한 한준희 목사(카슬힐 호주 장로교회: St. Columba's)는 촛불집회의 의미에 대해 “훗날 자식들에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뭐라도 했었음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모였던 사람들도 차츰 동포사회의 기존 운동세력들과 연대해갔다. 확대되어가는 연대 속에서 발전해가는 조직력은 촛불이 점점 더 활활타오르게하는 역할을 했다. 임 기자 또한 “그 이전부터 국내 이슈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고 했다.

80년대부터 시드니에서 사회운동을 해온 신준식 박사는 “시드니에서도 그동안 고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청년운동이 20여년간 활발하게 전개되어왔다. 그런 와중에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동조하는 일반동포들의 세력과 힘을 합하면서 2016년부터는 시드니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려는 새로운 청년들 세력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그 외연을 확장해나갔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는 “촛불집회와 이후 활동들을 통해 시드니에는 청년, 장년, 노년 운동세력이 형성되어 갔다. 이제 지역의 문제를 지역사회 안에서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서 진행하는 ‘풀뿌리 운동’에도 차츰 힘을 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촛불시위에 한 차례 참석했다는 시드니 거주 20년의 A씨는 “난 촛불도 태극기도 아니다. 부락같은 작은 교민사회에서 정치적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며 분열되는 모습이 가슴아팠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호주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작업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영어시험 등을 통한 시민권제한은 이민자의 정치권 진출 봉쇄라는 상징적인 조치다. 현 정부가 이민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촛불시위 등에 결집된 인력, 시간, 자원 등이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할 교민들의 삶에 직결되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한국 국민이나 해외동포들 모두에게 그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역사적 시민운동 속에서 상징이 된 촛불. 그 촛불이 한 시대의 과거로 흐르지않고 한국에서 또 해외동포들을 통해서 그들이 속한 사회 속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의 그 특이성과 역동성을 생각할 때 결코 쉽게 꺼지지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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