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장성은 오케이.. ‘내로남불’ 아닌가? 

한국 관공서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듯 호주 관공서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이 걸려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당연이 호주 국적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상징적 국가수반이다. 

필자는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호주 방문 때 수행 취재(호주 총리 수행 기자 자격으로)를 하다가 켄버라에서 양국 정상 만찬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당시 폴 키팅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 한국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고 김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호주 여왕’과 호주를 위해 건배를 제의로 화답을 했다. '호주 여왕(Queen of Australia)'이라니?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호주 여왕이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의 수반으로서 유명무실한 ‘호주 군주(the Australian monarch)’로 불린 것이다. 호주 연방 총독(Governor-General of Australia)은 여왕의 호주 대리인(the representative in Australia)일 뿐 그야말로 이름뿐인 위치였다.  

그러기에 연방 총독은 호주 총리가 호주인 중에서 추천해 여왕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형식을 취한다. 이 양국 정상 만찬장에도 당연이 당시 연방 총독이 참석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고서 호주가 하루 빨리 공화국(Republic)으로 국가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화국이 되면 호주인(국적자) 중 국가수반(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국가수반은 호주가 의원내각제인만큼 총리가 추천/임명을 하든지 아니면 의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요즘 호주 정치권의 최대 화두인 연방 의원들의 이중국적 스캔들이 점입가경이다. 이미 6명(상원의원 5명, 하원의원 1명)이 사퇴하는 파동을 일으켰지만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임한 의원들 중에 전직 부총리, 상원의장, 장관도 있다. 

이번 주 한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존 알렉산더 자유당 의원(베네롱 지역구)이 선천적 이중국적자 여부를 영국 당국에 문의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발표해 말콤 턴불 정부는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8일 재키 램비 상원의원(무소속, 타즈마니아 담당)이 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출생자임을 공개하면서 이중국적 의혹을 받고 있다. 노동당의 케이티 갤러거, 저스틴 키이, 수잔 램 의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닉 제노폰팀(NXT)의 유일한 하원의원인 레베카 샤키 의원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호주에서 이중국적을 보유한 사람들은 거의 사회 전반에 걸쳐 수백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호주가 사실상 이중국적을 인정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그러나 헌법 44조 때문에 연방 정치권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다. 만약 주/준주 의원들로 확대하면 아마도 수십명, 어쩌면 백명 이상일 수 있다. 사법부는 어떨까? 법관들 중에도 선천적 이중국적자들이 당연이 있을 것이다. 호주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장성들(지휘관들)의 이중국적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이번 주 빅토리아에서 국장을 한 전 연방총독 니니안 스티븐경(Sir Ninian Stephen)도 영국 출생자였다. 1960년대까지 연방총독들 대부분이 호주 시민권자조차 아니었다. 연방 총독에 대한 이중국적 규정도 없었다. 

퇴임한 연방 정치인들 다수가 정치인 연금을 받고 있는데 이들 중 이중국적자는 출마 및 당선 모두 무효이기 때문에 의정 기간을 토대로 지급되는 정치인 연금도 중단되어야 하나? 환불을 해야 하나? 이들이 받은 급여는 정당화될 수 있나? 
누군가 이들의 위헌문제를 제소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노동당은 바나비 조이스 전 의원이 부총리, 농업장관 시절 결정 사안에 대해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호주와 영국의 시민권을 가진 이중국적자가 호주에서는 연방 의원이 될 수 없지만 정작 영국에서는 의원이 될 수 있다. 이중국적을 장려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선천적 이중국적 보유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견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의원 자격 무효도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때문에 300년 전 영국 의회에 기초한 호주 헌법 44조는 지금의 호주 정치권에서는 ‘독소조항’일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이런데 재수없게 이번에 걸린 연방정치인들만 책임을 물어 사퇴시키면 만사 오케이가 될 수 있나? 그러기에 헌법 개정을 통해서 관련 규정을 완화시키거나 폐지를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계 정치 지망생들이 앞으로 연방 정치권에 진출하려면 이 문제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 
호주는 서방 국가에서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다. 해외 출생자 또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외국 출생자인 비율이 거의 절반(49%)을 차지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채 분명한 결함이 있는 헌법 조항을 고치지 않고 땜질 처방으로 지나가려면 이 문제는 언젠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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