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판 웨인스타인 스캔들’로 불리는 유명 방송인 ‘돈 버크(Don Burke)’의 여성 성추행 파문과 더불어 호주 직장에서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 사회문제로 급격히 재부각되고 있다.  
버크는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버크의 백야드(Burke's Backyard)’란 프로그램으로 일약 ‘가드닝 그루(gardening guru)'가 되면서 최고 인기 방송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그로부터 성추행 또는 외설적 폭언을 들었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서 폭로 대열에 합류한 여성이 10명이 넘는다. 이중에는 올림픽 수영 레전드 수지 오늘도 포함됐다. 오닐은 지난 2000년 버크로부터 “당신 성기가 이처럼 크냐?”는 무례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음란한 폭언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해 충격을 던졌다. 그녀는 팀 매니저를 통해 방송사(채널 9) 경영진에 불만을 제기했지만 버크에게 아무런 징계가 조치가 없었다고 비난했다.  

2012년 호주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AHRC)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15세 이상의 여성의 25%와 남성 6명 중 1명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5명 중 1명만 공식 불만을 제기했다. 대부분 직장 안에서 관리자 또는 고용주에게 불만을 제기했고 아주 적은 소수가 변호사, 노조 또는 인권단체 등 외부에 고발했다. 인권위원회 등에 불만을 제기한 사례는 실제 피해 사례와 비교하면 거대한 빙산의 일각(a tip of a very large iceberg)일 것으로 추정된다.  
불만 제기 사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불만 제기 후 가해자보다 고용주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1-2014년 퀸즐랜드공대(QUT)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은 상당 부분 관리자와 고용주들이 제기된 성희롱 불만 사례를 믿거나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종 불만 제기자들을 ‘문제 인물’로 취급했다. 또 돈(보상)을 받기위한 행동으로 오해를 했다.
  
‘돈 버크의 스캔들’에서 보듯 문제가 시정되지 않은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고용주와 남성 위주의 회사 분위기(묵인 관행)가 연관돼 있다. ‘버크의 백야드’를 제작, 방영한 채널 9 방송국 경영진들의 소극적인 대응 태도와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임원들의 태도, 묵인된 사내 분위기 등이 문제였다. 채널 9 방송은 ‘버크의 백야드’ 프로그램을 통해 상당한 광고 수입을 얻었기 때문에 버크의 못된 손버릇과 상습적인 외설적 농담 등 나쁜 소문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크를 징계하지 못했다. 
가해자들이나 고용주들은 “농담(just a bit of banter)이었다” 또는 “음란한 유머(ribald humour)였다”는 변명으로 둘러댔다. 지난 주 버크는 ‘마녀 사냥’이라고 반박했다가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거론하며 여전히 핑계를 대면서 행위 자체를 부인했다. 향후 그의 스캔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피해자들의 버크와 방송사를 상대로한 집단 소송 가능성도 거론된다.

호주에서도 젊은 근로자들 특히 여성들, 임시직, 이민자, 벽지 근무자 등의 성희롱 피해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상적 성희롱 경험과 성희롱에 대한 대중의 이해 사이의 차이도 성희롱 방지와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는 변명만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 정도가 성희롱인 줄 몰랐다”는 변명으로 빠져나가기엔 이미 ‘성희롱이 위법행위’란 인식이 호주 사회에 뿌리 내린지 오래다. 호주에는 연방 성적차별법(Sex Discrimination Act)과 주별 관련법이 있다. 법이 정의하는 ‘성희롱’은 상당히 광범위해서 모든 신체적 접촉만이 아니라 성적인 언어와 노골적인(음탕한) 시선, 글과 사진과 동영상이 다 해당된다. 가해자가 흔히 주장하는 “만지지도 않았다”는 기준이 절대 아니다. 가장 빈번한 육체적 성희롱은 언짢은 텃칭, 허깅, 키싱, 부적절한 신체 접촉, 외설적인 이메일 또는 텍스트를 보내는 것 등이다. 성적인 언짢은 코멘트 또는 농담, 사생활 또는 용모에 대한 과도한 질문, 노골적인 응시 또는 심술궂은 곁눈질(leering)도 포함된다.   


무엇이 성희롱인가에 대한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직장 내 성희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의 배상 소송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업주들도 예방 교육과 처벌규정 강화 등 자구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의무적 회식문화와 노래방의 음주가무 관행 등에 익숙한 한인 커뮤니티도 느슨한 성희롱 인식을 벗어나야할 것이다. 외부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포 사회 일각에서 소문이 나도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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