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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호일보 신년 문예 당선작시 <귀항 길 아침> 김성은 / 수필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가> 안선옥
한호일보 | 승인 2018.01.11 17:12

시 <귀항 길 아침>   김성은 

귀항 길 아침 

조타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업 방향에서 서서히 틀어지는 선체,
수면에 그려지는 커다란 곡선을 따라  
바람이 조용조용 따라온다
새벽녘까지 발톱을 세우던 파도도
제풀에 지쳤는지 얌전하다
한 철을 물위에서 생활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로를 열어주는 바다의 친절이 고맙다
어창의 중량감이 발바닥에서 전신으로 퍼지고 
뿌듯한 가슴에 거만해지는 어깨,

집에서 나오던 날 아내는
발길질하는 뱃속 아이를 손바닥에 기억시킨 후 
흑백 태아사진을 지갑에 넣어주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메일로 확인한 건 
체력이 고갈된 막바지 작업 즈음이었다 
행복한 책임감은 활력으로 변했고 
들뜬 기분은 솔선수범으로 표현되었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모든 것이 게으르다
하품하는 파도를 길어 올려 식기를 닦아놓고
시간을 잡아채며 하루를 당겨본다
선상에서의 아침은 햇살이 반찬이다
간이 적당히 밴 바람을 살짝 곁들이고 
후식으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이면 
대체로 만족이다
뱃길 안내를 맡은 갈매기 서너 마리가
환영 인사하듯 갑판에 날아든다
첫 대면할 아들의 얼굴이 
뱃머리 전체에서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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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호일보 신년 문예 당선작

가작 

수필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가>   안선옥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가? 

막무가내로 뛰어노는 손자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파릇파릇 새싹이 솟아나는 봄이 연상된다. 녀석들은 툭하면 거실 벽에 붙여 놓은 안락의자 등받이 위로 올라간다. 등받이 위에서 이 쪽 저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안락의자 등받이는 물렁해서 뛰기도 좋고 발바닥에 닿는 감촉도 부드러우리라. 혹시 천방지축 뛰다가 녀석들이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질까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럴 경우라도 녀석들의 최종 낙상지는 푹신한 의자 위가 될테니 괜찮으리라 마음을 가다듬는다. 낄낄 헤헤 웃으며 뛰어노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는 게 마냥 좋다.  그래서 나는 지들 엄마가 내려오라며 큰소리를 낼 때까지 그냥 놔둔다.  의자의 등받이 뛰기가 싫증 나면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이거 보라며 의자 등받이 위에서 마루바닥으로 껑충 뛰어내리기도 한다.  한 녀석이 시작하면 다른 녀석도 꼭 따라서 한다. 높이가 꽤 되는가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에 나는 얼른 마루 바닥에 방석을 깔기도 하고 바닥에 깔렸던 카펫을 움직여 의자 밑으로 바짝 붙여 놓기도 한다. 
녀석들이 숨이 차는지 이제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만화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나는 때는 이때다 싶어 녀석들을 끌어 얼른 내 무릎 위에 앉힌다. 그리고는 녀석들 볼에 내 볼을 갖다 대고 비빈다.  다음에는 내친 김에 팔 다리도 쓰담쓰담 하고 엉덩이도 만져본다. 피부가 어찌 그리 부드러운지 솜털 같고 탱탱 하기는 잘 익은 살구나 자두 같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면 정말 살구나 자두처럼 싱그러운 과일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내 볼과 손바닥에 전해오는 녀석들의 터질 듯 부드러운 피부탄력은 말로는 표현이 힘들고 손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경험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정말 좋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촉감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싫증을 잘 내는 녀석들은 이내 딴 짓을 하기위해 내 손길을 걷어낸다.  아쉽다. 그래서 속마음으로 속삭인다.  그래, 너희들은 봄이다. 가지를 길러 내고 열매도 맺어 가기 위한 긴 여정 속에 이제 한 발짝을 내디딘 봄이로구나. 어서 어서 힘을 키워 씩씩하게 자라 나거라. 
이제 성인이 된 내 자녀들은 여름이다. 밝은 햇볕 속에 싱그러운 이파리를 드러내고 찬란한 젊음을 자랑한다.  자신들의 의견을 거침없이 주장하는가 하면 사회정의를 외치기도 한다. 직장에서 자신들이 신입이었을 때는 일의 적응 강도에서 혹은 동료 간의 관계에서 힘들어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일하는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안다고 말한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야말로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어엿한 경력자가 된 것이고 전문가 수준이 되어가는 것 이다.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그들은 분명 인생의 전성기에 있다. 
가정에서는 무한한 인내와 책임감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군소리 없이 거뜬히 키워 내고 있으며, 차츰 연로해 가는 부모에게도 신경을 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많은 일을 해낼 힘이 있고, 지식이 있고, 의지도 있고 무엇보다 젊음이 있다.  여름 사람인 내 자녀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아날로그 세대인 내가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는 것을 보면 저리 비키라며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고는 어느새 문제를 해결해준다.  “내 친구도 부모님 집에 가면, 컴퓨터를 고쳐줄 일이 하나 둘씩 꼭 기다리고 있대.” 자기들끼리 얘기하며 낄낄 웃는다. 많은 일을 감당해내 병이 라도 나면 며칠간 약을 먹고 끙끙 앓지만 금방 다시 언제 아팠 느냐며 툭툭 털고 일어난다.  강하게 내려 쪼이는 태양열도 때로 찾아오는 어두운 먹구름도, 무섭게 내리는 장마 비도 이들의 강철 같은 열정을 막지는 못한다. 
향수병이라도 생긴 양 한국 땅이 마냥 그립고 왠지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남편과 나는 시드니 근교의 윌슨 산을 찾아 간다.  윌슨 산은 우리가 꿈에도 그리는 고향 산과 많이 닮아 있다. 특히 가을 산은 더욱 그러하다. 산은 제법 높고, 그 언저리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우리 눈에 익숙한 수종들이다. 상수리 나무, 은행나무가 그러하고 단풍나무 역시 반갑다. 가을을 맞이한 나무 잎새들은 더 이상 초록이 아닌 우아한 노란색 혹은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미 땅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 사이로는 앙증맞은 다람쥐들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도토리를 찾고 있고, 이를 숨죽여 보고 있는 우리 눈은 즐겁기만 하다. 잠시 여고생 시절로 돌아가 책갈피에 끼워 놓을 요량으로 고운 낙엽을 몇 장 주워 보기도 한다. 
산자락에 널리 펴져 자라고 있는 밤나무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알밤을 주렁주렁 매달고있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밤을 주워 담느라 부산하다. 나무 자락을 흔들어서 밤송이를 따 내리는가 하면, 이미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밤알을 줍기도 한다. 입 안에는 껍데기를 까서 넣은 생밤 향내가 가득하다.  유쾌했지만 몸을 여기저기 아프게도 만드는 밤 줍는 수고를 털어 내고 싶다면 기대치 않은 곳에 호젓이 자리 잡고 있는 산속 카페를 들려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팔고 있는 호박 스프를 꼭 먹어야 한다. 카페 주인장은 호박 스프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채로 투박한 호밀 빵과 함께 내어 준다. 시골 인심이라 했던가! 스프는 배를 불릴 만큼 한 그릇 가득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가을의 윌슨 산은 풍부했다. 사람들을 영과 육으로 살찌우게 만든다. 이렇게 누구든 품어주고, 무엇이든 다 내어주는 풍부한 윌슨 산이기를 꿈꾸는 가을 사람이 우리 가족 속에 있다. 
우리 친정 부모와 시부모님은 모두 이 세상에서 운명을 달리 하셨다. 겨울 얼음장처럼 차가운 땅 속에 누워 계신다. 그렇지만 그 분들도 우리 가족의 일원인 것은 분명하다. 그 분들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말과 행동은 언제나 우리 가족 마음 속에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나는 그분들의 인간적인 약점은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린다. 대신 그 분들의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아름다운 말과 행동 만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조차도 그 분들의 생활 지혜를 활용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부모님 같은 말과 행동을 흉내 내면서 차츰 그들을 닮아 가고 있는 중이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평생을 선하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사셨던 분이 계셨다.  한 번 세운 계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실천하셨던 강인한 정신력으로 사셨던 분도 계셨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남편을 잃고 혼자 사셨지만, 자녀를 위한 투철한 희생정신과 신실하심으로 불철주야 기도에 힘쓰셨던 분도 계셨다. 그분들의 아름다운 말과 행동 모두가 우리 가족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정신력의 근간이라 믿는다.  그 분들의 희생과 사랑과 기도가 없었다면 오늘 날의 봄 날 같은 녀석들도 여름 날 같은 자녀도 가을 날을 닮고 싶어하는 우리도 어찌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가족 간의 달력에서는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서로 다른 가족 구성의 옷을 입고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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