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여름은 크리켓과 테니스의 계절이다. 12월 중순부터 국제 테니스대회가 퍼스, 브리즈번, 시드니를 거쳐 열린 뒤 1월 멜번에서 4대 그랜드슬램 중 첫 대회인 호주오픈이 열리고 있다. 올해가 106년째 대회이며 총상금이 5500만 달러다. 남녀 단식 우승자는 무려 400만 달러를 받는다. 

테니스 팬들은 생중계(호주 채널7)를 통해 세계 최고 스타들의 기량을 볼 수 있다. 종종 이변이 일어나 더욱 팬들을 흥분시킨다. 호주오픈은 한국 기업인 기아차가 메이저 스폰서라는 점에서 친숙한 점도 있다. 
 
세계 스포츠계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계 선수들이 세계 프로여자골프대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여자 골프계의 레전드가 된 박세리 이후 수십명의 한국 여자프로 선수들이 세계 상위를 다수 점유하고 있다. 어떤 해에는 절반 이상의 메이저 및 주요 투어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휩쓸기도 했다. 1-10위 중 절반이 한국 선수들일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하나의 현상은 프로 테니스계에서 러시아를 포함한 구 동구권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점이다. 마치 미국 프로농구에서 흑인들이 막대한 개런티를 받으며 주름잡고 있는 것과 양상이 비슷하다. 세르비아 출신인 노박 조코비치를 위시해 수십명이 남녀 프로 테니스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세계 랭킹 2위인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에서 12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대 발칸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가 여러 나라로 해체되면서 테니스 선수들이 대거 서방 국가로 이주했다. 그 중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계인 다미르 도키치(Damir Dokic) 가족은 8살 딸 옐리나(Jelena)를 데리고 시드니에 정착했다. 보스니아에 살던 크로아티아계인 브랑코와 류즈비카 마토세비치(Branko and Ljubica Matosevic) 부부는 아들 마링코(Marinko)와 멜번으로 이민을 왔다. 

크로아티아계인 이비카 토믹(Ivica Tomic)은 보스니아계인 아디샤(Adisa)와 결혼을 했고 골드코스트에 난민으로 정착했다. 그는 이름을 존으로 개명했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자녀들이 테니스 스타가 되도록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호주의 새로운 테니스 스타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의 자녀들인데 일부는 강력히 밀어붙이는 부모들(pushy parents)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옐리나 도키치의 스토리로 매스컴에 자주 보도돼 잘 알려졌다. 다미르 도키치의 딸 옐리나에 대한 모진 대우는 옐리나의 자서전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길들이기 어려운 의미)’을 통해서도 공개됐다, 옐리나는 최고 랭킹 세계 4위였고 2001년 프랑스 오픈에서 준우승을 했으며 투어 단식 6승 기록을 갖고 있다.

버나드 토믹(Bernard Tomic, 25)은 2018 호주오픈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해 화제를 모았다. 그의 스토리도 예리나 도기치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엘리나와 버나드의 아버지들은 극에 달한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미칠 정도로 흥분했고 때로는 천부적인 기질을 보였다. 존 토믹은 스스로 터득한 코치로서 아들 버나드를 가르쳐 놀랄 정도의 선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 문제(분노폭발 조절장애)를 갖고 있다. 2006년 애들레이드에서 존은 차를 몰아 상대 코치의 자동차로 돌진했다. 버나드가 16세 때인 2008년 한 경기에서 마리안코(23)에게 뒤지자 존은 폴트 선언에 극도로 화를 내며 아들에게 코트를 나오라고 지시했다. 2010년 호주오픈에서 존은 크레이그 틸리 경기이사에게 버나드가 늦은 밤 경기를 갖게된 것에 대해 항의를 하며 또 다시 그의 분노가 폭발했다.       
아버지 존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나태한 아들을 어떻게 테니스 스타로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버나드의 전 연습 파트너인 토마스 드루에트는 2013년 스페인 대회 때 존에게 박치기를 당해 코뼈가 부러졌다.
 
옐리나처럼 버나드도 부친 일생의 꿈을 성취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권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아버지의 훈육 속에서 평범하지 않는 어린 시절 보냈다. 다른 선수들은 두 선수들의 눈에서 공포심을 보았다는 말을 했다.

큰 키(195cm)에서 내리 꽂는 강서비스가 주무기였던 버나드는 18세 때 톱 100위 안에 들었다. 19세 때는 톱 30위에 진입했다. 그의 최고 랭킹은 17위였다. 데이비스컵 대회에서 스탠 바브링카, 윔블든에서 로빈 소더링, 브리즈번에서 케이 니시코리, 데이비드 페러를 격파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활력이 없었고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큰 대회에 준비되지 못한 기량을 자주 드러냈다. 
몇 년 전 혜성같이 나타난 ‘코트의 악동’ 호주의 닉 키르지오스(세계 21위)의 등장과 함께 토믹의 이름은 코트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의 랭킹이 수직 하락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토믹은 지난 13일(토) 호주오픈 예선에서 이탈리아의 신예 로렌조 소네고에게 패배해 본선 진출 자격을 얻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경기 후 퇴장하면서 그는 “수백만 달러를 세고있다”는 푸념을 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기량이라면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나타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란 우울한 분석이 나온다. 
25세인 토믹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나이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도 당연히 벗어나야 한다. 천재적인 테니스 스타가 이 정도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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