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선수가 한국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24일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호주 오픈(AO) 8강전에서 이번 대회 또 다른 돌풍의 주역인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런(27. 세계 97위)을 꺾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준결승에 진출했다. 26일 열리는 4강전 결과에 따라 아시아 테니스의 새 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호주 언론은 ‘정현 한국 테니스를 세계 무대로 옮기다(Hyeon Chung takes South Korean tennis to the world)’란 제목으로 ‘정현 신드롬’을 상세히 보도했다. 또 경제지 AFR은 ‘정현이 아시아의 테니스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호주 미디어도 뒤늦게 정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정현은 4회전(16강전)에서 호주오픈 남자단식 통산 최다인 6회 우승에 빛나는 노박 조코비치(31•세계 14위•세르비아)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제압해 파란을 일으켰다. 앞서 3회전(32강전)에서는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를 맞아 3시간23분 동안의 혈투 끝에 세트 스코어 3-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올랐다.  

이런 잇따른 쾌거가 호주 오픈에서 이루어진 것에 대해 호주 동포들은 왠지 친근함을 느낀다. 호주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이런 정도의 환호를 받은 전례가 없었다.    
정현 선수의 호주 오픈 4강 진출을 보며 많은 한국인들은 박찬호(첫 메이저리그 진출), 박세리(첫 LPGA 우승), 김연아(세계 피겨스케이팅 제패), 박태환(올림픽 수영 금메달 획득)을 떠올렸을 것 같다. 호주오픈을 계기로 새로운 스포츠 영웅이 탄생한 것을 한호일보도 환영한다. 

테니스는 호주인들에게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한 종목이지만 아시아인들에게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었다.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중국의 리나가 메이저대회 여자 단식에서 두차례 우승했고 남자 단식은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가 유에스(US) 오픈에서 준우승한 게 최고 성적이다. 1989년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여 최연소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을 세운 마이클 창은 대만계 미국인이다.

정현이 호주 오픈에서 주고 있는 감동은 기대 이상의 탁월한 경기력만은 아니었다. 21세(한국 나이 22살) 청년이 큰 경기의 고비 고비마다 페이스를 잃지 않았고 또 좋은 매너를 내보이며 즐기는 테니스를 보여준 것 등으로 팬들의 마음을 얻었다. 기록 경신보다 최선을 다한 경기에 만족하는 모습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4강 진출이 확정된 후 코트에 드러눕거나 라켓을 던지며 포효하지 않았다.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코치와 가족이 있는 관중석으로 달려가지도 않았다. 두 손을 들고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또 정현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위트 있는 인터뷰에서 보듯 유머 감각도 갖췄다. 서구 사회에서 스타 플레이어에게 유머의 부재는 감점요인이다. 그만큼 유머는 삶의 한 부분이다.  
조코비치와의 16강전에서 정현은 패자에게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정현은 승리 후 “어릴 적 우상 조코비치를 따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겸손해했다. 조코비치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정현의 승리에 누가 될 수 있으니 (나의) 부상 얘기는 그만하자. 그는 마치 벽 같았다”며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축하했다. 랭킹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우상을 넘어선 과감한 도전, 위대한 스포츠맨십에 세계 팬들은 감동했다.

24일 8강 경기에서 승리한 후 코트에서 즉석 인터뷰를 할 때 사회자인 짐 쿠리어가 “3세트 마지막 게임에서 40-0으로 매치포인트를 잡았지만 몇 번 흔들렸다”고 이유를 묻자 정현은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고 말해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같은 솔직함, 어느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정현의 자산이다. 21세 나이에 이런 매너와 답변을 보면서 한편으로 놀라웠다.

피나는 노력으로 몇 년 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호주 오픈을 통해 당당히 세계적 선수가 된 정현을 통해서 한국에서 사회 체육 수준에 머물던 비인기 종목인 테니스는 앞으로 많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현의 ‘호주대첩’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스포츠와 문화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자극이고 소득이다. 한국의 청년세대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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