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Australia Day)를 앞두고 녹색당이 날짜 변경 켐페인를 시작하겠다고 연초에 발표했다. 예상대로 말콤 턴불 정부는 강력한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카운슬이 이날 경축 행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 시민권선서식 개최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미 멜번 시티 인근 2개 카운슬은 시민권선서식을 하지 않고 있다. 상위 정부(연방 정부)의 하위 정부(카운슬)에 대한 일종의 ‘갑질 행위’로도 볼 수 있다. 앞으로 인권단체가 법원에 부당 행위로 제소를 할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의 주요 행사는 시민권선서식, BBQ파티, 시드니하버에서 열리는 범선 경주대회(tall ships races), 폭죽놀이 등이다. 물론 많은 청소년들이 호주 국기를 몸에 휘감고 파티를 즐기는 사례도 많다. 

1월 26일을 기념하는 것은 국가적 개념에서 본다면 사실상 명분이 빈약하다. 그 이유는 1788년 이날 영국의 제1 함대(아서 필립 선장)가 시드니만에 도착한 역사적인 유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훗날 NSW주가 된 남태평양의 영국 죄수 식민지(penal colony) 토대가 호주 건국일이라는 명분은 그다지 미덥지 않다. 아서 필립 선장은 해군 제독으로 승진해 영국의 죄수 유배 식민지로 시작된 NSW의 초대 총독이 됐다. 이는 일종의 제국주의 건설 행위(act of empire building)인 셈이다.  

원주민은 영국 함대의 도착으로 영토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핍박과 학살을 당한 피해자다. 이런 가해 역사가 시작된 날을 기념하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또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요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에 동조하는 층이 커지고 있다.

폴 키팅 정부(노동당) 시절 장관을 역임한 크리스 샤츠트는 “시드니만에 뉴홀랜드(New Holland)임을 주장하는 영국 깃발을 게양한 것은 다른 주 호주인들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NSW 중심인 1월 26일을 전국적인 국경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994년부터”라고 지적했다. 
이 논쟁의 핵심은 보수주의자들이 “날짜를 바꿀 이유가 없다. 날짜 변경 요구는 무엇이든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좌파의 검은 완장 역사관이다. E 원주민들의 요구에 대한 굴복”이라는 비난과 연관돼있다.  

녹색당, 일부 노동당 의원들, 많은 원주민 커뮤니티 관계자들은 1월 26일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백인들의 호주 침략(invasion)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토지의 원주인들인 원주민들에게 무례함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라고 비난한다.  
자유-국민 연립은 날짜 변경에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노동당은 한편으로 이 이슈의 민감성을 인정하면서도 변화를 거부해 왔다. 
  
그러면 이같은 찬반 대립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샤츠트 전 장관은 “호주 연방을 제정한 날인 1901년 1월 1일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1월 1일이 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국일을 새해의 첫날인 1월 1일로 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다.
첫 의회 개회일인 5월 9을 차선책으로 선택하자는 주장도 있다. 연방 의회가 멜번에서 켄버라(연방 수도)로 이전한 날이며 현재의 의사당이 개원한 날이기도 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스티튜트의 설문조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1월 26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응답자는 절반 미만이었다. 56%는 아무 날로 정하든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논쟁 역시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동성결혼 합법화 이슈처럼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가 필요하다. 또 많은 예산을 들여 국민투표를 시행할 수 없을 것이다. 변경 요구가 타당한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 관련 설문조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계 리더들이 정략적인 판단을 뒤로하고 국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의지를 갖고 추진을 한다면 예상보다 쉽게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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