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A.

미국 엘에이에서 거행되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호주와 한국 가족들의 대표로. 두 달 전 어머니 장례식을 위해 구입했던 양복을 입었다. 진짜 까만 흑색이다. 잠깐 망설였었다. 너무 검지는 않은가? 죽음의 추억을 되살리지는 않을까? 그러나 다른 예복이 없었기에 강행했고 걱정은 기우였다. 나름대로 생각도 있었다. 결혼은 죽음이다. 서로를 향해 제대로 죽어야 결혼은 성공한다. 유아독존적 자아를 가진 두 젊은이들. 이제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을 버리고 당신을 위해 죽겠다고 서약하는 것이 결혼이다. 그 때 비로소 두 몸이 하나 된다. 온갖 세상풍파를 견뎌내며 건강한 자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결혼식은 장례식과 같다. 그런 의미를 가슴에 품고 흑색 양복으로 내 역할을 잘 감당했다.

결혼식 후 하루가 남았다. 폴게티 미술관(Paul Getty Museum)을 찾았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썼다는 세계최고의 부자 게티의 유산을 보고, 또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나 현대미술관(MoMA)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낯선 길이고 혹시 위험할 수도 있어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우버택시를 불러봤다, 모험이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반 택시나 렌터카 보다 저렴하고 안전했으며, 운전자와의 건전한 소통은 덤이었다. 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버를 만난 첫인상, 좋았다. 이 우버는 위험을 감수하며 첨단을 허용해주는 미국적 모험정신의 결과다. 그런 정신으로 허용해 준 것의 일부가 대박을 치면서, 미국을 먹여 살리고 세상을 장악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20세기 초 폴게티를 석유왕으로 만들어 준 자동차 산업이 그랬으며, 1998년에 세워진 구글이 그렇다. 2005년에 만들어진 유튜브는 세상을 소통케 하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0년에 시작한 우버는 교통혁명을 선도하며, 더 이상 차를 소유할 필요도, 렌트를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간다. 몇 일전 우버음식배달부가 피자대신 총알을 쏜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국은 절대 우버를 금지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기회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총기판매금지법 역시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학교 캠퍼스에서 총기를 사용한 대형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해도 그렇다. 그만큼 미국은 선천적으로 진취적이며 동시에 대단히 살벌한 곳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살인까지도 허용한다. 미국은 그렇게 강인한 자만이 살아남아 호사를 누리는 나라다. 이런 본질을 알고 지혜롭고도 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게 미국과 연결된 나라들의 살길이다.

2. 평창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 들렀다. 아버님을 모시고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에 다녀왔다. 메인스타디움에 가려면 평창 다음 진부 역에서 내린다. 그 다음 역은 강릉이다. 10대 후반 친구들과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혹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힘들게 달려가야 겨우 도착하던 곳이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잡으러’ 란 노래를 부르면서. 그런데 이제는 순식간이다. 집에서 전철 30분 타고 상봉역으로 가서, KTX를 타고 1시간 11분을 달리면 진부 역에서 내린다. 봉사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20분을 가면 올림픽 스타디움에 도착한다. 한국이 정말 대단해졌다. 모든 것을 다 연결시켜 놓았다. 국제 공항으로 들어오든, 경기도 구석에 있든, 원하는 곳으로 사람들을 연결시켜 모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의 공식 슬로건도 “Passion. Connected (하나 된 열정)”이다. 

이 슬로건은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는 ‘연결되어 하나 됨’이다. 이것은 잘 알겠다. 한국만큼 지하철, 버스, 인터넷 등이 잘되어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다. ‘열정’. 무엇을 이루기 위한 어떤 열정일까? 지금 한국민들은 두 가지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태극기’와 ‘촛불’이다. 특히 강경파 ‘태극기’들은 열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파라올림픽이 끝난 후 미국이 북한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손 볼 것을. 그러나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열정에 꽂혀있다. “절대 전쟁은 안 일어난다’라고 확신하며, 가족의 웰빙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부를 쌓고 있다. 이런 열정들을 모아 하나된 힘으로 만들어야 할 정치권은 따로 논다. 자신의 보신을 위하여 구태의연한 말들의 잔치만 벌인다. 안타깝다. 적은 밖에 있는데 왜 우리끼리 싸우고 난리들인지.

3. 호주

이제 다시 돌아간다. 엊그제 그곳에서 살다 오신 분을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질문을 받았다. ‘호주는 뭐 별 뉴스거리가 없지요?’ 그렇다고 해 주었다. 사실 호주까지 시끄러우면 세상은 종말이다. 호주는 지구상의 마지막 파라다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착각이다. 호주 역시 지구촌의 일부다. 변화무쌍한 세상과 긴밀하게 연결 (Connected)되어 있다. 부동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고, 민족 간의 갈등이 심해지며,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 위기지만 기회다. 차고 일어나서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늑대 같이 강한 자들이 우리를 먹어 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첫째, ‘바르게 연결되는 것’이다. 둘째, 그 연결을 위해, 또한 그 연결의 결과로 ‘하나되는 것’이다. 하나되지 못하는 민족과 단체는 이 살벌한 세상에서 도태되고 만다. 맨날 종노릇하다가 끝난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지고하며 하나인 진리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이웃을 향해 죽어야 한다. 괜히 쓸데없는 우물 안 자존심과 고집을 버려야 한다. 난 ‘연결시켜 하나되는 것’의 최고 전문가를 안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당신을 그에게 연결시키라. 그 분과 하나되게 하심을 허용하라. 그 하나된 관계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웃과 연결하여 더 큰 하나가 되라. 그때 비로소 위기로 가득찬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할렐루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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