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내 전체인구의 25%이상이 비유럽계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기업 임원들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의 95%는 유럽계 인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가 발표되자 호주가 표방하는 다문화주의는 이민자들을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5%의 유럽계를 위한 95% 비유럽계의 노동으로 유지되는 사회’라는 자조섞인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호주 대기업 최고경영자 불과 3%만 비영어권”
호주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시드니대, 호주아시아학회(Asia Society Australia), 시드니위원회(Committee for Sydney)가 호주 재계의 문화적 다양성 포용을 공동 조사한 최근 보고서 ‘변화 주도(Leading for Change)’에 따르면 최고경영자의 단지 3%와 임원급의 5.1%만이 비영어권 또는 원주민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최고 경영자의 절대 다수인 97%가 앵글로-켈틱 또는 유럽계라는 것은 선진국 중 드물게 성공적인 다문화주의를 정착시켰다고 자랑하는 호주에서 비참한 통계”라고 지적하며, 현행 관리급에 팽배한 고착된 편견과 차별을 바꾸려면 훈련과 큰 변화가 해결책이다. 문제점을 홍보하는 인지 확대(awareness raising) 또는 다양성 축하 이상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계에서는 이런 인종적 고착화가 더 심각하다. 연방정부 내각장관의 경우 비유럽계는 전무하고, 주 및 연방정부 차관급 중에서 비유럽계는 단 1%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페어팩스 미디어 분석에 따르면 호주노총 가입 지도자 43명중 비유럽계는 단 2명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팀 수포마세인 호주인종차별위원장(Race discrimination commissioner)은 기업계, 학계, 정치계에 대한 문화적 목표와 쿼터 설정을 요구했다.

수포마세인 위원장은 “372명의 CEO와 많은 연방 및 주정부 장관 중에서 비유럽계나 원주민 출신이 단지 1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문화적 다양성이 호주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립서비스가 아닌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UN, 호주내 인종차별 증가…처벌도 없어”
지난 해 12월 국제 인권 논의의 핵심기관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정기 보고서를 통해 정치권과 언론을 포함한 호주 사회에서 인종차별적 표현과 외국인 혐오증이 "증가세"(on the rise)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인종차별적 사건들은 비용이나 엄격한 증거 조건 탓에 소송으로 가는 일이 드물고,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는다며 인종차별적 표현을 범법행위로 규정한 법을 법집행 당국이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치적 연설에서 외국인 혐오성 발언이 자제되고 증오 연설이 공식적으로 불허되거나 규탄받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으며, 언론에서도 인종차별적 증오 연설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례로 지난해 수포마세인 위원장도 호주에서 언론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했다가 보수성향 출판물(더 스펙테이터) 로완 딘 편집인으로부터 “라오스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수포마세인은 라오스를 탈출한 부모 사이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호주에 정착한 인권운동가다.

또한 시드니 서부 지역에서는 최근 유명 무슬림 방송인들과 정치인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포스터가 곳곳에 붙여져 논란이 됐다. ‘호주 애국주의자들’ 명의의 포스터에는 무슬림 유명 방송진행자를 비난하며 그들을 잡아 교수형에 처하거나 추방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불어 멜번의 주요 대학에선 ‘중국인을 죽여라(kill Chinese)’라는 글귀가 적힌 중국인 학생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인종차별적인 벽보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5% 유럽계를 위한 95%의 희생은 정당한가?”
방송이나 광고에서 흔히 ‘3B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미인(Beauty), 아이(Baby), 동물(Beast)을 기용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이 통하는 이유는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호의에서 비롯한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 전체 행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는 판단까지도 가능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당장 손해일지 모르지만 전체 사회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행복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다. 

하지만 불행히도 호주 사회는 정말 적은 수의 유럽계가 더 많은 정치ㆍ사회ㆍ경제 권력을 독점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5%를 위해 95%가 희생을 하는 것이다.

호주는 주택난에 더불어 실업률, 범죄율까지 증가하고 있다. 임금 인상은 제자리인데 반해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비유럽계 이민자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호주가족연구원(Australian Institute of Family Studies)에 따르면 실업자와 저소득층 기준 자녀 1명당 주당 양육비는 최소 $140~170달러가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없는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833.24, 1자녀를 둔 가구는 $969.91, 2자녀를 둔 가구는 $1173.38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통계국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호주 중류층 가정의 주당 평균 수입은 $1,438였지만 저소득층의 평균 수입은 이 금액의 50%에 머물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저소득층의 대부분은 아시안을 비롯한 비유럽계라는 것이다. 

한편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5% 부유층의 그들만의 잔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혼의 기술(The Art of Divorce)’란 이름으로 시드니에서 진행된 할리우드 배우 러셀 크로우의 소장품 경매에서 그는 몇 시간만에 370만 달러를 벌었고, 35만 달러 상당의 판매가에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한인은 “호주가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비유럽계 이민자들을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호주는 다문화사회가 아닌 다문화를 표방한 21세기 신노예 국가”라고 일갈했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