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 공양 땐 창문을 닫고 저녁엔 실내 온도의 도수를 높이게 된다. 한 낮엔 솜털처럼 가볍게 보이는 흰 구름 떼들이 푸른 하늘을 등지고 한가롭게 떠다닌다.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서 저런 모습으로 떠돌아 다니다가 어디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우리들의 일생 역시 인연 관계에 의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갖은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쌓아 가면서 일생을 엮어 나가다가 어느 날 홀연히 구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온 곳도 갈 곳도 모른체 허둥지둥 살고 있는 중생들의 일생, 사는 동안만이라도 좀 더 풍족한 의식주를 보장받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해만 뜨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것은 모든 동물에게 주어진 본능적인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려는 정당한 노력은 아름다운 생명세계의 율동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근래에 불거진 일중의 하나가 이와는 정반대로 닫혀진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거짓을 쌓아 올리려는 사악한 무리들의 삐뚤어진 직업 윤리로 인해서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일이다. 이른바 ‘조작의 달인들’이다. 조작은 글자 그대로는 지음의 뜻인데 언제부터인가 거짓이라는 의미의 부정적인 단어로 전달되어 왔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올빼미처럼 새벽에 함께 모여서 조작의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것도 장기 내부에서 생긴 상처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느릅나무라는 한약재의 이름을 딴 가짜 출판사의 이름을 버젓이 달아 놓고서…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그 일에 매어 달리게 한 진정한 목적은 그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이익의 창출이었을 것이며 그 통로는 권력과의 내통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네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만족할 만한 결과만 얻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있었던 거짓의 조작됨은 소멸되거나 정당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집착에 대한 큰 오류이며 합리적 이치를 배반하는 진실의 부정이다. 모든 거짓에는 속이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속임수가 취하는 외형은 속임의 동기에 따라서 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인간의 경우 탐욕이 주된 동기일 때의 거짓말은 자신이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위한 물질적인 부나 명예, 권력 등등 무언가 일신상의 이익을 얻어 내려는 거짓말로 되어 버린다. 미움이 주된 바탕이 되는 상황에서의 거짓은 악의적인 속임수, 남을 해치거나 손상을 주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속임수의 형태를 띄게 된다. 

드루킹의 경우는 개인이 아닌 조직화한 거짓된 단체의 힘으로 탐욕과 미움의 동기가 함께 내재된 상당히 큰 규모의 조작을 일삼은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동기에 최첨단의 기기를 악용하여 속임수의 극대화를 도모한 행태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거짓으로 자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하고 사회를 분열시켜서 통합을 저해하는 악마의 세력이기에 그러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때론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상대에게 재미를 더해주기 위한 일시적 과장된 거짓말, 또는 농담으로 하는 것, 또는 경우에 따라서 사안의 경중을 살펴 방편으로 그렇게 하는 수가 간혹 있다. 사냥꾼에게 쫓겨 달아나는 노루를 본 승려가 뒤따라온 사냥꾼의 물음에 거짓말로 다른 방향을 가르쳐 주어서 노루를 살려주는 행위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드루킹의 경우는 이와는 정반대임으로 그런 잘못됨을 장기간에 걸쳐 행하면서도 마음속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데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속임의 분위기가 내밀하게 퍼져 있음에 힘입었을 것이다. 권력이 바뀌면 정당함이 거짓으로 치부되고 금력이 많으면 유죄도 무죄로 풀려나며 가능한 재주만 있다면 남을 속이며 상처를 주더라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자위적 부패 심리에 진실의 정의감은 마취된 지 이미 오래된 것이 한국 사회의 오늘의 실상이다. 

그래도 거짓은 어떻게 해서라도 추방되어야 마땅하며 그게 못되면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도 찾아야 될 터인데 도리어 더 지능적인 방법으로 교묘하게 권력과 유착이 되고 이념과 패거리가 되고 있으니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는 우리들이 더 부끄러움을 느끼며 참담한 심정으로 조국을 바라본다. 
그런 부패된 사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탐욕이 주류이며 그 진원지는 무지가 원인이다. 과도한 욕심의 추구는 상식적 합리성으로부터 눈을 멀게 하며 인과의 올바른 법칙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한다. 그로 인해서 욕심은 더 큰 탐욕으로 그 세를 확장하려 들고 거짓은 더 큰 세력의 집단을 형성해서 자신들의 뜻을 달성하고자 그렇듯 노력한다. 

그 검은 오도된 심리를 어떻게 하면 순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명상의 시간에서 잉태될 수가 있다. ‘침잠(沈潛)’은 자기 마음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맑고도 큰 거울이며 지혜를 생산해 내는 기름진 텃밭이다. 바쁨에 밀려 자신의 마음 흐름을 살피지 못한 채로 그냥 떠밀리며 살 것이 아니라 슬로우 비디오에 자기 마음을 다시 찬찬히 비춰 바라보면 어느 곳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가 지각하게 된다. 그렇게 지혜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깊은 통찰력이 생기게 되면 드루킹 조직이 남을 속이려고 애쓴 모습이나 우리 자신이 자신을 속이려는 그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경인선이나 서유기만 탓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 보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모두는 여우 꼬리를 따라 가다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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