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다시 찬란한 가을

축복이다. 이런 좋은 날씨를 맞이할 수 있음은 대단한 특권이다. 시내로 나갔다. 왕립식물원을 걸었다. 크고 아름답고 잘 관리된 정원이 다 내 것이다. 오색 꽃으로 단장한 특별전시관을 휙 둘러보고는 카페에 앉았다. “이런 꽃들과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멘트를 날리며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내 속에서만 웅얼거렸는지 중년 여성의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친절했다. ‘아, 여기가 천국이다’. 동시에 생각했다. “세금을 잘 내야 되겠군!”. 

배를 탔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호주의 아이콘 오페라 하우스와, 최고 부자동네 포인트 파이퍼를 오른쪽에 두고 맨리로 갔다. 부두 앞 케이에프씨에서 치킨을 먹으며 눈 앞에 높이 걸려 휘날리는 3개의 국기를 보았다. 호주국기, 원주민국기, 그리고 또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 무지함 때문에 오늘의 행복이 손상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는 배를 탔다. 19분 동안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드세지만 춥지는 않은 바람을 타면서 처음 호주에 여행 왔던33년전의 추억을 되 살렸다. 그 때도 이렇게 배를 타고 맨리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석양이었다. 동쪽에서는 보름달이 떠오르고, 서쪽으로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한 여명과 한 노을이 자기 앞의 바다들을 일직선으로 물들이다가 결국 연결되는 한 중간 지점에 나는 떠 있었다. 밤과 낮을 지배하는 완벽한 구형의 두 광명체가 스스럼없이 만나는 그 현장에서 난 작정했다. 이 곳에서 살리라. 그래서 난 이곳에 왔고 아직까지 살고 있다. 

2. 행복한 결혼식

지난 19일 세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영국 왕위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와 미국인 신부 메건의 결혼식이었다. 관련 업계의 추정으로는 400억원이 훨씬 넘어 들어간 초호화 행사다. 흑백 혼혈인 평민 여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영국 황실의 파격이 멋있었는데 신부는 더 멋있었다. 길고 긴 흰색의 베일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지만, 옷보다 사람이 더 좋았다. 배우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면이 알차서 그랬을까? 아름다운 얼굴과 화사한 미소, 우아한 자태와 단아한 예절이 돋보이며, 왕족 신랑보다 평민 신부가 더 멋있어 보였다. 심장이 아파 참석치 못한 신부의 백인 아버지 대신 시아버지 챨스 왕세자가 신부를 인도했고, 흑인 어머니는 마치 패셔니스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딸의 결혼식을 지켜 보았다. 주례 설교를 맡은 마이클 커리 주교는 흑인으로서 최초로 미국 성공회 수장에 오른 사람이다. 춤추듯이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그에게, 대부분 백인들로 이뤄진 귀족들과 초청된 셀럽들은 감동의 표시를 아낌없이 보냈다. 초청된 흑인합창단의 ‘스탠바이미’의 축가도 참 좋았다. 14분 동안 진행된 설교의 주제는 ‘사랑의 능력’. 정말 그 능력은 대단했다.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되는 젊은 부부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옴을 보았다. 유럽제국들이 15세기부터 시작한 아프리카 흑인의 강제 납치와 노예화의 시대가 비로서 끝나가는 것 같았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은 결코 대적하지 않는다. 밝다고 선이 아니며, 어둡다고 악이 아니다. 빛과 어둠이 있어야 하루가 완성된다. 크기와 자태가 분명히 다르지만, 두 광명체가 번갈아 혹은 함께 한 지구를 비추며 축복하는 것처럼, 이 날의 존귀한 결혼을 통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길 바랬다.

3. 대통령들

지난 21일, 한국의 현 대통령은 1박4일 동안 미국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 사이 23일에는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있었다. 아직도 감옥에 있는 전전 대통령은 그녀의 재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이 전 대통령은 11분 동안 모두발언을 통해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고 보도됐다.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냥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어 서로 인정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재판의 결과가 사법의 공정성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난 누구의 편도 아니다. 지금 대통령도, 전 대통령도 전전 대통령 편도 아니다. 하나님 편이다. 하나님 만이 해와 달의 창조자이시며, 이 세상에 공의와 진리, 평화와 행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각각의 대통령에게 환호하거나 혹은 분노하기를 잠시 그치고, 먼저 창조주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우리 모두는 그 분이 주시는 은혜의 빛으로 살아간다. 백인과 흑인,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잠시다. 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각 사람은 때와 환경에 따라 악인이 되고 선인도 된다. 그래서 불안해하기도 하고 자만해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다 허망하다’ 한탄하며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기대하라. 그런 인생을 가르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있음을 기대하고 믿으라. 창조의 하나님은 가끔가끔, 왕자와 평민이 결혼하는 것을 통해,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저녁에 서있게 하심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신다. 

그래서 난 오늘 변화의 중심에서 고통하고 있는 조국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또한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한다. 해와 달, 바다와 바람, 정원과 나무 그리고 사람과 가정과 나라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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