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호주 퍼스 출신의 저명한 식물학자였던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자발적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 여행과 고국의 LG 그룹 구본무 회장의 타계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이별’을 우리에게 생각케 한다.

구달 박사는 104세의 고령으로 불치병도 없었으며 컴퓨터를 활용할 정도의 지능의 소유자였으나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노인이 삶을 지속하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운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전별사를 남겼다. 

그는 연구를 계속해도 된다는 대학의 권유를 사양한 채 가족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스위스로 출발해 생을 마감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또한 고국의 모범적 기업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되자 "연명 치료는 사양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73세로 타계했다. 한국 재벌 최초로 수목장으로 장례를 마쳤다.

두 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또한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선택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LG 고(故) 구 회장은 필자와 인연이 있었다.구 회장 어머니 고(故) 하정임 여사는 친구 누님이여서 청년 시절의 구회장 모습이 40여년이 지났는데도 아련히 떠오른다.
당시 필자가 서울에서 신문 기자로 재직하고 있을 때 금성사(LG 전신) 뉴욕 지사 직원으로 근무 중인 구회장이 귀국해 외삼촌인 친구와 함께 나의 출입처를 방문했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어서 길 건너 남대문 시장 골목에 있는 허름한 중화 요리집으로 안내하여 짜장면을 사 주었다.

"앞으로 그룹 회장이 될 터인데 이 짜장면을 기억하고 항상 사원하고 소통하라"는 필자의 당부에 "마음에 새기겠습니다"라며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던 겸손한 태도가오늘날 LG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도 사내외에 ‘화목’의 아이콘을 심어 주는 씨앗이 된 것이리라.
그래서였을까? "새와 숲을 사랑한 거목, 한그루 나무 곁에 잠들다"는 제목으로 고국의 일간 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 존재를 추구한 독일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는 "과실 안에 씨가 들어 있는 것처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생명 속에 죽음이 들어 있다"고 설파했다.
그렇다. 죽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으니 우리는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헛된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의 평균 수명을 살펴보면 약 1만년 전에는 15세에 불과했고 200년 전까지만 해도 40세를 넘지 못했다. 조선 시대 27명 왕의 평균 수명이 46세였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드셀라 (Methuselah)는 무려 969년을 살았다는 인류 역사상 최장수 기록이 있다. 그 당시에는 화식(불을 가해서 만든 음식 )이 아닌 생식이었고 공해가 없었으며 인간의 몸안에서 비타민C가 저절로 생성되어서 생명이 연장되었다는 과학자의 주장이 있기도 하다.

현대 생명 과학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 동물은 성장기의 6배를 최대 수명으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성장기가 20년이므로 6곱하기 20이면 120세까지 수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일전에 이웃 평범한 호주인의 모친상에 참석했다. 리드콤의 룩우드 장례식장이었는데 상주를 비롯해서 내방객들의 복장이 일상복으로 검은 정장 차림은 필자 부부 뿐이어서 어리둥절했었다. 또 장례식장 분위기가 엄숙하고 침울하지 않고 마치 모국에 여행가는 어머니를 환송 나온 가족처럼 약간은 쓸쓸해 보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문상객을 맞았다. 부의금은 없고 간혹 마련해온 조화는 고인이 입원했던 병원에 기증하며 간단한 다과와 와인으로 고인과의 추억담을 나누고 이별 행사를 마쳤다.

호주에 전해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장례에 부치는 시가 떠오른다.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말게
나는 거기 없네.
나는 자고 있지 않네.

나는 불어오는 바람일세
나는 눈 속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나는 황금 들판에 비추는 햇살
나는 소슬하게 내리는 가을 비

나는 거기 없네
나는 죽지 않았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am not sleep.

I am thousand of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 in snow.
I am the sunlight ripen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죽는다는 것도 삶의 일부다.잘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잘 살 수 있는 법이다.
(Well dying is well living.)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세상이 울고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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