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한 친구가 생일기념으로 딸과 둘이서 유럽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도 그런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오래 전에  다녀온 유럽여행에 대한 관심보다 딸과 둘이 떠난다는 그 낭만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모녀 여행이   그 친구가 원해서 주선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분 딸의 로망이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아내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 젊은 딸의 마음씨가 참 기특하다며 더 부러워했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말하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한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 나 역시 그러한 일들이 많았다. 잘 나가던 한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너무 작고 초라한 내 모습이 괴로워 잠을 설치었던 밤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러한 비교의식이 얼마나 무익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의 비교는 물론이지만, 못한 사람과의 비교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것이 우월감이든 열등감이든 모두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활력을 떨어뜨린다.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굳이 비교하려면 남들과의 횡적인 비교보다 과거의 자신이나 미래의 자신과의 종적인 비교가 더 건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모녀 여행의 경우, 자신의 딸이 지금은 세 아이를 돌보느라 여유가 없지만, 금년 말 방학 때 둘 만의 낭만적인 여행을 떠나자고 먼저 제안할 수도 있다. 아니  자신의 딸이 먼저 모녀여행을 원해서 이미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또한 과거에,  자신이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과 캐나다 등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어머님이 너무 연로 하셔서 그런 모녀여행이 어려운데 그 때 잘 다녀왔다는 흐믓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이,  남의 여행을 부러워 하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삶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뒷 정원과 수영장에 쿠카브라, 오리, 앵무새, 까치 등 여러 새들이 자주 온다. 

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는 것을 본다. 서로 흉내를 내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는 각기 다른 몸짓과 빠르기로 날며 움직인다. 꽃들도  자기 때에 맞추어 제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꽃을 피운다. 지금은 겨울 철이다. 그래도 난꽃이 만발하고, 분홍색 선인장류의 꽃들이 피어 한창이다. 동백 꽃들이 크고 붉은 꽃망울을 뽐내고 있다.  모든 꽃들이 봄과 여름에 다 한꺼번에 경쟁하며 꽃을 피운다고 가정해 보라. 아니 겨울 꽃이 없다면 겨울의 정원은 얼마나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울지 상상하기 어렵다.  꽃들은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때와 방법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과 향기를 뿜어낸다.

새들과 꽃들의 그런 다름이 조화를 이루어 더 아름답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왜 어떤 획일적인 고정관념에 매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하며 흉내내려고 애쓰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은 기끔 우쭐함이나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상처를 내고  때로는 절망하며, 불행함을 느끼며  사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모습,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다만 사랑이나 연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을 가질 수는 없을까?

유대인의 구전설화에,  신은 각자에게 그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를 하나씩 주었다고 했다.  우리 마음의 창이 그 악보를 바르게 읽고 해석해서 잘 연주하면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이다.  자신도행복하고 세상에 유익을 준다. 관현악단에서도 각기 다른 악기들이 연주해야 할 다른 악보들이 있다. 만일 바이올린이 첼로 악보를, 첼로가 바이올린 악보가  부러워 연주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현악기지만 잘 소화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음색도 맞지 않아 고통일 것이다. 무엇보다 악단 전체의 연주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러움이나 비교의 대상이 모녀의 여행처럼 경험을 위한 것은 비교적 건전하고 쉽게 할 수도 있다. 가령  모녀의 일과 형편에 따라, 유럽대신에  짧은 국내여행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와 기쁨을 재충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는 집이며, 자동차, 직장, 자녀나 부모, 남의 시선같은 것들의 비교는  당장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그런 것들은 덜 중요한 삶의 형용사나 부사일 뿐이다.  우리 마음의 창이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미혹될 때  더 중요한 주어와 동사, 즉 우리 자신의 삶과 생명력이 흐려질 수 밖에 없다. 

건축가는 건물이나 집의 창을 설계할 때 세심한 고려를 한다. 그 창에 따라 햇빛의 양과 방향 이며 보이는 풍광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따라 고객의 만족도가 크게 다르다.  우리 마음의 창은 그에 비교 할 수 없이 더 중요하다. 이 창에 따라서 자신의 삶과 행복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원한다면, 집이나 직장보다 마음의 창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인 지름길이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지혜롭고 건전한 마음의 창을 통해 세상과 이웃 그리고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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