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갑질

한국 양대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직원들이 총수 일가의 '갑질 근절'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공동집회를 14일 청와대 사랑채 앞마당에서 열었다. 

'갑질 논란', '기내식 논란' 확산에 맞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공동 연대를 통한 집회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가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총수 일가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조양호 회장의 구속", 아시아나항공 연대는 "박삼구 회장의 퇴진" 구호를 외쳤다. 또 '침묵하지 말자, 우리가 바꾸자 아시아나', '조씨 일가 물러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도 들었다.  

집회는 2시간가량 이어졌으며 주최 측 추산 300여 명이 참여했고, 양사 직원들은 앞으로도 공동집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갑질 어디까지 당해봤니?','너는 나다' 등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양대 항공사의 직원들은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무대에 올라 경험담을 나눴다.

한편 이런 한국의 갑질 문화에 대해 호주의 직장 문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특히 한인 오너의 직장의 경우 이같은 문제는 더 심각했다.

“사장님 생일파티 초대는 선택 아닌 명령…거부 시 찍혀”
시드니 소재의 한 한인 소유의 의류 회사에서 일하는 한인 A씨는 본인의 직장 내 갑질 문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B업체의 관리팀장인 그는 “한국 갑질요? 호주도 마찬가지죠. 특히 한인 오너가 경영하는 회사라면 아마 더할걸요”라며 “한국 대형 항공사는 대우라도 좋죠. 우리는 겨우 생활비도 안 되는 임금 받으면서 요구하는 것은 참…”이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한 가지 사례만 언급해 달라는 요청에 A씨는 오너 생일날 식사 초대와 주말 근무의 부당함에 대해 설명했다.

A씨는 “사장의 생일 저녁에 식사 초대를 받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참석해야 하죠. 만약 안가면 바로 찍혀요”며 “전에 같이 근무하던 한 팀장의 경우 개인적인 일로 참석하지 않았다가 사장의 은따(집단 안에서 특정의 사람을 따로 은근히 떼어 멀리하는 일)와 업무 성과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지시로 회사를 떠났어요. 팀장급 직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날은 꼭 참석해요”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주말 근무의 부당함에 대해서 “사장은 주말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업무량을 지시하고, 오히려 왜 주말에 쉬지 않고 일하냐고 물어요. 어이가 없죠”라며 “호주 최저 임금이 올랐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죠. 주말 근무 수당은 둘째치고 물가가 오르는 만큼이라도 기준 시급이나 올려줬으면 좋겠어요”고 한숨을 내쉬었다.

‘갑질의 기준’조차 모르는 한인 오너 많아
또 다른 한인 직장인 C씨는 회사 오너의 경우 갑질의 기준조차 모른다고 한탄했다. 요식업체인 D에서 일하는 그는 “사장 갑질요? 갑질의 기준도 모를걸요”라고 어이없어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 운영이 어렵다며 툭하면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 얘기해요. 그러면서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나가라고 하죠. 다들 가정이 있는데 말이죠. 지위를 이용한 협박, 일종의 갑질이죠”라며 “결국 회사 운영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고 책임은 직원한테 지라고 하니…”라며 씁쓸해했다.

이어서 C씨는 “성과를 내야 하니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개인의 삶은 없고 회사원으로서의 ‘나’만 존재하죠. 그래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가끔 호주 직장에서 근무하는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임금은 비슷해도 직장 문화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한인 밑에서 일하는 이상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갑질은 ‘공감 능력’의 결여…상호존중 원칙 세워야
힘이 있으면 힘으로 돈이 있으면 돈으로 혹은 권력이 있으면 권력으로 군림하고 갑질하는 사회는 후진사회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혹은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품이 되는 저질 자본주의 그리고 관료주의가 불러온 병폐다. 

특히 한인사회의 갑질 문화는 갑이 을에게 가하는 측면도 크다. 거기 내재한 심리는 ‘나는 네 처지가 아니다’ ‘당신이 겪는 고충은 나와 상관없다’라는 공감 능력의 결여다.

상대의 지위와 관계없이 상호존중에 기초한 수평적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갑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한국의 유명한 9년 스타트업 회사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경우 전형적인 ‘꼰대’ 없는, 갑질 없는 회사로 알려졌다.

철저한 주 5일제로도 모자라 이미 2015년부터 매주 월요일은 오후 1시에 출근하는 4.5일제 도입하고, 2017년엔 평일 오후 6시30분이던 퇴근 시간을 30분씩 단축하고도 임금 삭감은커녕 점심시간 1시간 30분 보장에 읽고 싶은 책이라면 여전히 무제한으로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그렇다고 작은 회사도 아니다. 올해 400명을 신규 채용(이미 200여 명 채용)하면 직원 1000명을 넘기는 큰 규모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지금 같은 조직문화가 만들어진 것이지 그저 직원들에게 자유로운 문화를 누리게 해주려는 목적에서 여러 복지혜택을 도입한 게 아니다"라며 "사원들과 친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조직 상하 관계에서는 친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진짜 친할 수는 없기에 신뢰 관계를 사적 친밀도가 아닌 실력으로 쌓아야 잡음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우아한형제들의 이같은 복지는 '복지=성과'는 아니지만 배려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한 직원들의 노력에 2017년 매출 1626억원에 영업익 21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배, 10배 늘었다.  

김 대표는 “산업화 시대 공장처럼 회사는 생산성을 빌미로 직원을 착취하는 갑이고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을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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