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며칠 동안 호주 의회가 시끌벅적했다. 군소 정당인 KAP(Katter’s Australian Party, 케터의 호주당) 소속인 프레이저 애닝 상원의원(Senator Fraser Anning)이 14일(화) 등원연설(maiden speech)에서 극단적인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백호주의 복귀’를 주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며 절반 이상이 복지수당에 의존한다. 또 호주 사회의 동화와 융합에 가장 비협조적(소극적)이다. 따라서 무슬림의 이민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호주의 이민 문제와 관련해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은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다. 호주는 유럽계 크리스천 국가이기 때문에 백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이같은 극단적 주장에는 대체로 3가지의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첫째, 정치인으로서 말할 수 없는 것(공개 언급이 매우 어려운 껄끄러운 사안)을 ‘언론 자유’를 빙자해 ‘용감하게’ 거론함으로써 극우주의자들의 단골 주장인 ‘피해자론(victimhood)’을 부각시킨 점이다. 소수 엘리트의 ‘정치적 올바름(편견 배제: political correctness)’으로 인해 침묵했던 다수가 듣기 원했던 것을 지적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목적은 ‘센세이션’을 이용한 홍보 극대화다. 애닝은 14일 과격 발언으로 하루 사이 아무도 몰랐던 상원의원에서 대부분이 아는 정치인이 됐다.  등원연설 후 여러 주류 언론이 그와 인터뷰를 요청했고 신문 주요 지면에 그의 얼굴이 실렸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급속 홍보되고 있다.
KAP의 당 대표인 봅 케터 연방 하원의원은 “당의 전화통이 뜨겁다. 걸려오는 전화의 90%가 애닝의 발언을 지지한다. 그의 연설은 아주 훌륭했다. 누군가 해야 할 말을 한 것”이라고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세 번째는 KAP와 원내이션당(One Nation Party)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목적이다. 봅 케터의 연방 지역구는 퀸즐랜드 최북단이고 애닝도 퀸즐랜드 담당 상원의원이다. 사실상 KAP가 퀸즐랜드를 기반으로 한 정당이기 때문에 퀸즐랜드에서 지지율이 높은 원내이션과 보수 성향 유권자층을 상대로 경쟁 관계에 있다. 또 애닝 의원이 원내이션 소속으로 상원의원직을 계승해 정치권에 진출했지만 바로 탈당해 KAP로 당적을 옮겼기 때문에 핸슨 의원과 매우 불편한 관계다. 두 군소정당은 선호도 배분에도 민감하다. 애닝 의원의 등원연설에 대해 폴린 핸슨 의원은 그 자신도 비슷한 주장을 했으면서도 애닝을 나치의 괴수 괴벨에 비유하며 비난에 동참했다. 
 
15일 호주 의회는 초당적으로 애닝의 발언을 규탄하면서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을 거부하고 피부색 또는 인종과 무관한 호주인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토크백 라디오, 소셜미디어, 미디어 기고, 댓글 등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애닝 의원이 정도를 완전히 넘어선(went too far) 극단적 주장을 했다고 비난했다.  
상하 양원에서 여러 의원들이 편협함(bigotry)을 질타하는 비난 연설을 이어갔다. 원주민계, 무슬림, 유태계, 유럽계, 아시안, 아프리칸 백그라운드 의원들은 신참 상원의원의 꼴사나움(indecency)과 무지에 탄식했다.  

상원에서 말레이시아-호주계인 페니 웡 야당 상원원내대표와 벨기에계인 마티아스 코만 의원(자유당)이 주도했다. 하원에서는 두 명의 여야 유망주인 조쉬 프라이든버그 에너지, 환경 장관과 에드 후지치 노동당 의원이 주도했다. 프라이든버그 장관(자유당, 멜번)은 어머니가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유태계이며 후지치 의원은 시드니의 무슬림계이다. 잠재적 총리 후보로 꼽히는 두 의원은 연설 후 뜨겁게 포옹했다.  

지난 주 호주 인구는 25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중 해외 출생이거나 최소 부모 한 명이 이민인구를 포함하면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같은 이민으로 만들어졌고 유지되는 나라에서 편견에 사로잡힌 인종차별적이며 분열적인 이민정책 주장은 강력하게 배척해야 한다. 
언론 자유(freedom of speech)에는 분명한 한계(명예훼손, 외설, 아동 포르노그라피, 범죄 선동, 증오 발언 등)가 있고 책임을 수반한다. 무책임한(irresponsible) 선동인 애닝의 발언같은 편협함은 호주 사회 어디에서도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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