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는 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말이다. 더구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와 함께 봄의 추석이 찾아오는 남반구 호주의 계절 속에 살아가는 교민의 감회는 남다르다.
고향의 기억은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아니라 날이 갈수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은 어인 일일까?

선조들이 유목민인 서양인들에 비해 농경 사회로 출발했던 동양인들의 고향 생각이 더욱 두드러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생활 터전을 자주 옮겨 가며 생활하는 유목민과 달리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농사와 가축을 기르는 동양인들의 고향의 추억이 길고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고향을 찾을 수 있지만 그리운 고향에 갈 수 없는 6만여 명의 남북 이산가족의 고향 생각은 더욱 절실하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산가족의 망향에는 언제나 마을, 동산, 들녘의 자연과 친구, 동창을 아우르는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의 음식이 떠오른다.

영하의 겨울밤 땅속에 묻은 김치독에서 떠온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던 냉면, 싱싱한 가자미로 담근 식혜, 도루묵 맑은 탕, 대구 사과와 쌍벽을 이루었던 사리원 사과, 강아지 떡. 이들이 고향의 맛을 기억 속에 이어간다.

일제 강점기 조선 최고의 시인이었던 정지용의 시  ‘향수’는 고향의 영상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을리야

       ( 중략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 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을리야”

우리가 낳고 자라며 살던 곳이 그리워진다. 발가벗은 아이들이 붕어, 피라미 새끼와 더불어 텀벙대던 냇가의 모래톱, 해저문 어스름 저녘에 피어 오르던 밥 짓는 연기.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잔치날 시루떡, 푸른 하늘 아래 달리던 국민학교 운동장, 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날 화롯가에서 꺼내 먹던 군밤.. 

이들 장면은 고향으로 달려가는 출입구가 되어 타향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 준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해야 고향의 그리움을 안다.

현대 문명은 고향을 떠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귀금속인 진주는 조개의 껍데기 안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인도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 후한말 삼국지에 등장하는 난세의 영웅 조조 위왕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서도 
“늙음은 시름시름 찾아들건만 
언제 다시 고향에 돌아가려나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언덕으로 머리를 두거니
이 몸인들 어찌 고향을 잊을 것인가

라고 망향의 자작시 ‘극동서문행’을 읊었다.

고국의 가곡이나 가요에는 사랑 다음으로 고향을 노래하는 가사가 많다. 그만큼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성이 한민족의 가슴에 맥맥이 이어 오고 있다고 분석된다.
그런 맥락에서 고국의 남북 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산가족의 남북 왕래가 자유로 지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굳게 믿는다. 이는 한민족의 염원이자 역사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고향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고향은 필자의 눈앞에 떠 올라 언제나 선명하게 보여온다. 내가 그 곳을 떠난 그 날의 모습 그대로..  

고향은 인간들의 전설이 모여 만들어진 한 권의 일기장이라 하겠다. 또한 고향은 마치 인생이라는 좌표의 원점과 같아서 우리가 해외나 국내의 어디를 가서 살더라도 결국은 이 원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측정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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