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해안에서 석양을 마주할 수 있는 곳, ‘Town of 1770'

기착지 번다버그(Bundaberg)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목적지 ‘Town of 1770’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로 떠난다. 숫자를 동네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 본다. 호주를 한 바퀴 도는 1번 고속도로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많이 들어가야 하는 바닷가 동네다. 홍수 철에는 도로가 물에 잠겨 자주 고립되는 동네이기도 하다.

하이웨이를 벗어나 전형적인 2차선 호주 시골 도로를 달린다. 여행하는 사람이 많이 찾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러밴을 끌고 가는 차 그리고 캠핑에 필요한 물건을 지붕 위에 가득 싣고 달리는 지프차가 많다. 특히 젊은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봉고차 형태의 숙박 시설을 갖춘 캠핑카도 많이 보인다. 

동네에 들어선다. 바닷가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주위를 걷는다. 하비 베이(Harvey Bay)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에는 젊은이가 많다. 바다에는 높은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 해변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청춘 남녀로 북적인다.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직원이 반갑게 맞으며 동네 자랑을 한다. 궁금했던 지명 이름, ‘1770’에 대해 문의했더니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쿡 선장(Captain Cook)이 1770년에 이곳에 상륙했기 때문이란다. 호주 사람들의 쿡 선장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다. 동부 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쿡 선장이 상륙한 곳이라는 기념비가 수없이 많다. 

관광안내소 직원의 조언대로 근처에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태평양이 펼쳐진다. 따라서 파도가 높다. 파도가 높으니 서핑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 든 사람은 잔잔한 바다를 선호하지만 젊은이는 파도가 높은 바다를 찾아 나선다.

전망대를 떠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책자에 나와 있는 산책길을 찾아 나선다. 라운드 힐 계곡(Round Hill Creek)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평양을 바라보며 걷는 둘레길이다. 나비가 많은 곳이라고 책자에 소개된 곳인데 한두 마리 정도만 눈에 뜨인다. 나비가 나오는 철이 아닌 것 같다.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걷는데 중년의 남녀가 바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용하는 카메라는 큼지막한 렌즈가 달린 DSLR 카메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 동우회에서 만난 사이라고 한다. 마이크로 렌즈로 나비를 찍으려는데 나비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쉰은 훌쩍 넘긴 중년의 남녀가 같은 취미를 즐기며 스스럼없이 함께 여행한다. 자유로운 호주인의 삶을 본다. 

바다 냄새를 뒤로하고 다른 볼거리를 찾아 나선다. 호주에서만 본 종이처럼 벗겨지는 나무(Paperbark)가 숲을 이룬 둘레길이다. 입구에는 ‘수풀 문화유산(Bush Heritage)’이라고 쓰여 있다. 수풀 문화유산? 처음 듣는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둘러보는 데 45분 걸린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45분 바로 아래 1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는 낙서도 있다. 낙서가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나름대로 또 다른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 젊은이들이 여행할 때 많이 이용하는 캠핑용 자동차. 자연을 찾아 자유스러운 삶을 즐긴다. 부럽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동시에.. ‘잊지 못할 경험’
숲으로 들어선다. 늪지대에 만들어놓은 수많은 디딤돌을 건너기도 한다. 제목으로 쓸 수 없어 효용 가치가 없다고 알고 있는 나무로 둘러싸인 숲이다. 나무 하나하나를 보면 몸체는 종이처럼 찢어져 있어 품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곳에 들어서니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경제적인 효과로만 효용 가치를 이야기하는 내가 부끄럽다. 

호주 동부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작은 산에 오른다. 버스타드(Bustard Bay)라는 곳이다. 여행자로 조금은 붐빈다. 산책길에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산책길 중간에는 쿡 선장이 1770년 5월 24일에 상륙했다는 큼지막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길지 않은 산책길 마지막에는 두툼한 목재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 바다 먼 곳에서는 쾌속선이 하얀 물거품을 뿜으며 질주한다. 조금 떨어진 풀밭 위에서는 젊은 여자 혼자서 지는 해를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다. 

해가 서서히 떨어지는 것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적당한 구름이 끼어있는 사이로 떨어지는 해가 만들어 놓은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스러지며 남기는 잔영이 아름답다. 내 삶의 잔영을 잠시 생각해 본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산책길을 돌아 나오는데 반대편에서 또 다른 해가 솟아오른다. 아니,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 예기치 못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아주 오래전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광활한 벌판에서 보았던 광경이 생각난다.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둥근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던 희귀한 잊지 못할 경험이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자연과 호흡하며 지내는 자연스러운 삶, 무엇이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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