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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어느 일요일 아침’ - 정원일
정원일 (공인회계사) | 승인 2018.11.08 13:23

일요일 아침에 교회를 가느라 도로에 들어서면 평소 줄을 늘어서 교통 체증으로 붐비던 것과 달리 한가한 길을 느긋이 달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단촐한 나들이에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비치고 꽃 향기라도 날리면 그만한 평화를 맛보는 행운도 쉽지 않다. 며칠 전 일요일에도 모처럼 비가 그치고 화창한 봄날의 선물 같은 휴일 아침의 여유가 주어졌다. 한참을 운전하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빈 트롤리를 단 큰 차 한 대가 내 차 앞을 거의 들이 받을 만큼 가깝게 쏜 살 같이 끼어 들었다.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췄지만 놀래킨 황당함과 모처럼의 평화를 빼앗긴 것에 불쑥 화가 치밀어 크락션을 누르려니 이젠 더 앞에 있는 차를 추월해 쏜 살 같이 달려 나간다. 으례 운전을 급히 하는 사람인가보다. 

평소엔 얌전한 사람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급해 지는 사람들이 주위에 적잖이 있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장로님은 성품도 자상하고 목소리가 조용해서 그 말을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차분한 분인데 운전을 시작하면 마치 새로운 인격체로 변하는 것 같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서부터 작동하는 움직임과 운전 속도에 놀래고 앞 차에 들이대는 간격이 좁아 옆에 무심코 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혼자 황급히 헛 브레이크를 밟곤 한다. 성격이 난폭한 분이 아닌데 운전을 하면 그렇게 급해지나 보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아 있다 운전 하는 그 분 얼굴을 여러 번 다시 쳐다봤던 적이 있었다. 어느 여 집사님도 매뉴얼 차를 운전하는데 왼손 잡이 그 분은 자신이 바빠도 손님을 잘 모셔다 주는 친절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차를 타고 난 분들은 고마워 하면서도 마치 청룡 열차같은 놀이 기구를 타고 난 것 같다고 탑승 후기를 말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일요일 아침의 행복을 빼앗아 간 얼굴을 알지 못하는 무례한 운전자도 그러려니 적당히 이해가 된다. 교회에 거의 다와서 마지막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선 차를 보니 아까 나를 추월했던 바로 그 차가 부릉거리며 서 있다. 기껏 추월을 하고 서둘러 가는 것 같더니 결국 같은 지점에서 신호등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풀리면 또 서둘러 앞질러 가겠지.. 결국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도로 위에 민폐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소 거친 도로의 내전(?)을 거치고도 30여분이나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변의 커피 숖에 들러 가기로 했다. 이곳은 케익과 과자가 맛있어서 늘 손님이 붐비는 곳이다. 앞의 카운터에는 한 젊은 남자가 부시시 헝클어진 머리에, 그저 편한 옷을 대강 걸쳐 입고, 서너 살 난 어린 딸의 고사리 손을 잡고 커피와 딸기 스무디를 케익과 과자를 주문 한다. 작게 틀어 놓은 라디오의 음악 소리보다 큰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내가 시킨 심부름을 잘 수행해야 하는 착한 남편의 다짐과 사랑스런 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아빠의 자신에 찬 고백이 담긴 듯 하다. 일요일의 평화가 동네 사람들 안에, 가족들 속의 평범한 행복이 하늘에서 비치는 봄의 햇살과 더불어 가게에 가득 차는 듯하다. 마치 나에게 잠시 빼앗겼던 일요일 아침의 평화를 보상이라도 하듯... 

아침엔 유명한 영화 배우의 사망 소식이 전해 졌었다. 폐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운동으로 잘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그의 호언 장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잘 이겨 내리라고 기대했었다. 바로 몇주 전에도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며 향후의 영화 계획을 소개하는 그의 말에는 자신만만한 포부가 담겨 있었다. 워낙 젊은 시절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스타답게 정치에서 연예계에서 여러 풍문을 낳으며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TV로 소개되는 많은 사진들 가운데 병색이 짙어 보이는 몇 장의 사진은 죽음 앞에 무기력한 인생을 생각해 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빠른 성공과 최고의 속도로 달려 온 것 같은 그의 인생은 화려한 인기와 명예와 부러움을 받았지만 그도 평범한 진리 안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병색 깊은 사진은 96세에 돌아 가신 할머니의 모습과 병원에서 돌아 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사진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모두 죽음이란 마지막 신호등 앞에 조용하고 겸손하다. 

속도를 내야 하는 화려한 인생이 있어도,  진정한 평화와 사랑은 그저 평범한 삶의 느슨한 속도에 있음을 봄이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새삼 생각해 본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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