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
원주민선교 회의 차 투움바에 다녀왔다. 오래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만 보았었고, 퀸즐랜드 내륙을 횡단해 내려오면서도 저 멀리 있겠거니 하며 지나치기만 했었다. 그렇게 오래 그리움이 몽우리 지더니, 드디어 가서 보게 되었다. 브리즈번 공항에서 내려 거의 두 시간을 차로 달려, 자카란다가 흐드러지게 핀 가로길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세상 살다 보면 이룰 만한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듯 도시인듯 이곳 저곳을 돌아봐도 깨끗하고 단정했다. 사람들도 친절했다. 새벽 동틀 무렵 아침 먹으러 들어간 맥도날드 종업원의 명랑한 인사가, 산 밑 세상의 모든 시름들을 단번에 날려보내 주었다. 교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호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신선하고 질 좋은 농산물의 집산지이기에 한국 대기업도 지사를 설치해서 많은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준다. 그렇다. 참 좋은 곳이었다.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도시 이름이 참 좋다. ‘늪’ 혹은 ‘늪에서 자라나는 멜론’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발음 해 보는 것이 더 좋았다. “투움~바”. 가운데를 경쾌하게 올려줘야 한다. 마치 경쾌한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투둠~ 투~움~’. 맑고 진한 석양이 내리는 시간, 여전히 흐드러진 자카란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 이름을 몇 번 불러봤다. 수 만년부터 이 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투둠~ 투~움~’. 

2. 과거
이 곳에 백인들이 들어오기까지 당연히 이곳은 원주민들의 주거지였다. 덥고 습기가 많은 아열대성 기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이 곳은 시드니와 날씨가 비슷한 곳인데다가 700미터의 고원지대요, 공해가 없이 쾌적하기에, 원주민들이 많이 모여 살았었다. 그러던 중 이 곳이 처음 백인들에게 발견되어진 것은 1827년 알란 커닝햄에 의해서다. 영국인 식물학자이며 탐험가인 그는 세계를 돌다가 브라질과 시드니를 경유하여 모레톤베이(현 브리즈번)에 도착한다. 그 때가 1816년. 그 후 10여년 넘게 호주 대륙 동부지역 이곳 저곳을 탐험하다가 다시 모레톤베이로 와서 드디어 대분수령산맥(Great Dividing Range)를 넘기로 한다. 해발 0미터의 해변에서 바라보는, 직선거리 100킬로미터 떨어진 700미터 고지의 산맥들은 마치 병풍 친 절벽과도 같았다. 길도 없는 산길을 말에 의지하여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올랐을 때, 그는 놀라움과 감격의 유레카를 외친다. ‘드디어 왔노라, 보았노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과장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시드니를 거쳐 블루마운틴을 넘어가 보았고, 지금의 캔버라도 탐험했지만 투움바에서 바라본 서쪽의 대 지평은 정말 달랐다. 그의 눈 앞에는 4백만 에이커의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소문이 나자 백인들이 다퉈 달려오기 시작했다. 1850년에는 에이커 당 4파운드 였던 땅 값이 10년 만에 150파운드로 폭등했다. 그렇게 개발되면서 지금은 캔베라 다음가는 크기의 내륙 도시가 되었다. 공기 좋고, 꽃과 공원이 가득하며, 경제적으로 풍요한 곳이 되었다.

3. 미래
그러나 이미 그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백인과 함께 몰아 닥친 전염병 때문에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어갔다. 그리고도 남은 자들은, 미국의 인디언보호구역과 같은 곳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무지하게 덥고 건조한 ‘셔버그’ 같은 동네를 급조하여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보았다. 그 원주민들이 다시 투움바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호주 내륙 도시 치고는, 마치 캔버라처럼 유난히 원주민들이 보이지 않았던 도시에, 원래의 주민이었던 그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망가져 버린 건강을 고치기 위해 투움바 병원을 찾아오고,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유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난민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품어줄 사람들이 없었다. 이미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곳은 이제 새로운 원주민선교의 프론티어가 된다. 살기위해, 미래를 꿈꾸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또 파송하는 곳이 된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비슷한 고난을 당해봤던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명적 부르심이다. 그래서 그 곳은 더 이상 음울한 ‘늪지’가 아니게 된다. 아름다운 꽃들이 휘날리며, 경쾌한 음악이 거대한 지평선으로 흘러 퍼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곳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그 곳의 황혼을 그리워한다. 영혼에 새겨진 노래를 다시 기억하며 조용히 읊조린다. ‘투둠~ 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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