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자처하는 매체는 ‘독자의 편지’(이름은 일정하지 않으나)라는 지면을 두고 있다.  독자가 임의로 공익을 위하여 글을 써 보내오는 자리다. 이 자리와 사설 그리고 시사 칼럼들이 모아져 오피니언 페이지라는 매체의 알짜배기 메뉴가 만들어진다.

불행하게도 이민역사 반세기, 인구 15만 호주 한인사회의 어느 신문에도 그런 자리가 없다. 그런 글을 써 보내오는 독자 및 구성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우리 신문에는 공론(公論)이라는 게 거의 없는 셈이다.

 나는 과거에도 가끔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런 편지를 계속 써나가다 보면 다른 분들도 따라 동참할까 하는 희망으로 앞장을 서 보려고 한다.

 독자의 편지는 짧은 게 원칙이다. 이름 있는 신문이라면 쏟아져 들어오는 편지를 될수록 많이 실어야 하니 그렇다. 그러나 넉넉한 지면에 비하여 투고가 적은 교포신문의 경우 조금은 길게 내주어도 될 것이다.

 오늘 나는 편지 하나를 써보겠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끝까지 읽어봐야 알 것이다.


한글도 풍부한 언어

 영어는 어휘가 풍부(rich)한 언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어도 낱말에 따라서는 영어를 앞지르는 게 적지 않다. ‘죽는다’는 동사를 보자. 돌아가다, 사망하다, 타계하다, 운명하다, 하늘로 가다, 눈 감다, 작고하다, 별세하다, 사별하다, 세상을 하직하다, 소천하다, 열반하다, 서거하다, 영민하다 등 적어도 30여 개의 동의어가 가능하다.

 순수 우리말에 더하여 한자가 뿌리인 게 많고, 거기다가 사회계층을 반영하여 죽는다는 간단한 표현에도 지독한 인간 차별을 하니 그런 것이다.

 2005년에는 부친의 100주년 생일을 추모하여 칼럼집 하나를 냈었다. 출판사에서 마지막 편집을 직접 봤는데 추모사사에 생일을 무어라고 써야 좋을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탄생 정도로 해야 할 걸 탄신(誕辰)으로 해버렸다.

 한국에도 영어로 테더러스(Thesaurus)라고 불리는 동의어 사전이 있고 출판사에도 비치되어 있었더라면 그렇게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그 말은 큰 실수는 아니었다. 공자나 석가모니의 큰 업적은 남기지 못했으나 인간으로써 부친이 그들과 다른 게 뭔가.

 그러나 이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위에서 동의어 사전이라고 했지만 테더러스는 그저 동의어를 평면적으로 나열한 게 아니고 글쓰는 이가 원하는 말을 찾을  있게 체계적으로 고안된 방대한 사전이다. 미국판은 내 대학 시절인 50년대에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런 수준은 못되지만 비슷한 목적으로 2009년 ‘넓은 풀이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 부제로는 Korean Thesaurus (낱말어휘정보처리연구소 편)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있으니 좋은 우리 글을 쓰려는 한인들과 인문학 지식을 늘리려는 범생들을 위하여 이것과 사회과학사전, 정치학사전, 철학사전, 법률사전 등 주요 사전류(reference books)를 구입해 이 사회 어딘가의 도서관에 갖추어 놓았으면 좋겠다.

 시드니에서 볼 수 있는 한국어 도서는 따로 조사해보지 않았으나 아주 취약한 게 사실이다.  몇 개 호주 대학과 카운슬 도서관 구석에 조금씩 산재해 있을 뿐이고 그나마 사전류는 없다.

 그럼 누가 돈을 대서 사올 것인가? 한 가지만 제안해본다. 적어도 5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쓰는 재외동포재단은 매년 현지의 사업 신청을 받아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벌써 20년도 넘게 여기 한인 단체들도 혜택을 받아 왔다. 한인회나 교육을 지향하는 단체가 공관의 추천을 받아 기금 신청을 해 기존의 도서관에 기증할 수는 없을까? 몇 푼의 돈이면 될 일이다. 한인사회의 도서관과 서점의 실태는 참으로 창피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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