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가방을 챙기느라 방에 들어가는데 TV에 눈에 익은 한 여성 연예인이  길거리의 젊은 군중들 앞에 서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잠시 멈추어 섰다. 젊은 그녀는 가수이기도 하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꾸밈없는 발랄함을 보여주며 때로는 자신이 공주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산다고 말하는 스스럼없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얼마 전에는 예능에 나와 수준급의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개최한 소식도 전했다. 

어느 행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법 많은 젊은 남녀들이 옹기종기 앉아 강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화면 뒤엔 유명 예능인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들으며 농담을 섞어 자신의 생각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밝기만 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예쁘고 젊은 한 여성 연예인이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는 바삐 지나치는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하는 평범한 인생의 진솔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남긴 댓글들을 보며 즐겁기도 했지만, 점차 자신의 약점과 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악플이 쌓이며, 있으나 마나 한 것 같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비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증은 깊어지고 안 보려고 하다가도 댓글들을 볼수록, 반복되는 깊은 심적 수렁으로부터 결국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치 혼동과 어두움으로 가득한 마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려 허우적대는 생존의 몸짓과 같다.  

어느 시골을 여행할 때 만난 한 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해서 “제가 누군지 아세요?”라고 묻자 “서울서 내려온 예쁜 처자지?” 하고 반기는, 평범한 한 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쓰고 있던 편견의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이 되었다고 한다. 온통 자신을 미워하고 비판하며 정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은 세상 저편에서 나를 받아주고 예뻐해 주는 따뜻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에 비로소 눈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은 20년 전에 실종된 17세 딸을 “내가 아니면 찾아 줄 사람이 없다”며 생업을 전폐하고 딸을 찾느라 애쓰는 한 아버지를 돕고 있다. 잃어버린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상실된 한 존재를 찾아 주고 싶은 데에는 자신이 겪은 동병상련의 마음이 작동했나 보다. 

어제는 유명한 배우이며 이름난 야구선수였지만 둘 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를 둔 연예인의 딸이 루프스라는 난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병으로 퉁퉁 부은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측은하게 한다. 부모 모두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심각한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지고 가슴 아프게 남겨진 자식. 그 자식도 깊은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악플의 배후에는 사람의 잔인한 마음을 부추기는 악의 영향이 존재한다. 

죄인을 처형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시체를 꺼내 다시 처형한다는 부관참시(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죽이는 것)는 인간의 정죄 원한이 얼마나 악랄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이 말을 실천하며 사는 익명의 사람들로 인한 희생양들을 목격하게 된다. 세상엔 이렇게 함몰되고 있는 뭇 청춘들의 부관참시가 즐비한 듯하다. 

중세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말을 해서 그 시대의 교황청과 권력자들로부터 숱한 비판과 정죄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옳았고 465년이나 지난 후대에 이르러 성대한 두 번째의 장례식을 교황청의 이름으로 드리게 되는 영예를 얻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굽히지 않았던 그에게는 비판이 있어도 자신을 붙든 삶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자체가 비판자의 상대적 정당성을 합리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인간은 서로 실수할 수 있는 죄인 일뿐이다.

에덴동산에서 가장 악한 뱀은 동산 한 가운데 심어진 ‘먹음직한 생명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 신처럼 눈이 밝아지게 될 것’이라고 사람을 꼬였다. 열매를 따 먹은 뒤 눈이 열려 악한 것을 보게 된 인간은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발가벗어도 즐겁던 에덴의 삶은 몸을 가리고 숨어 사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댓글은 마치 행복한 동산 중앙에 심어진 선악과와 같다. 댓글은 부끄러운 민낯을 비추며 약점의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창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에 다가가 열어보기 시작하면 자신을 숨기고 가리고 싶게 된다. 숱한 악평이 올 때 나 자신을 지키는 방어 능력은 내 시간을 들여 일부러 다가가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한 젊은 연예인의 소소한 아침 이야기는, 바삐 출근을 서두르던 세속의 생각에, ‘새 숨’을 들이키게 하고 먼지 묻은 마음에 잠시, 청정기를 틀어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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