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은 위의 책 서두에서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사는 귀족의 여행에 대해서 말한다. 데제생트 공작은 런던 여행을 계획한다. 양복과 부츠, 모자와 외투로 무장하여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간다. 런던으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책방에 들러 런던을 안내하는 책을 사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영국 선술집에 들러 먹을 것을 시킨다. 쇠꼬리 수프, 훈제 대구, 구운 쇠고기와 감자, 맥주 2파인트 그리고 스틸턴 치즈 한 덩어리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본다. 손님들은 대부분이 영국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면서 먹고 마시다가 권태에 사로잡힌다. “여기 파리에서도 이렇게 멋진 영국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직접 다닐 필요가 뭐가 있지? 런던의 냄새, 날씨, 시민, 음식, 심지어 나이프과 포크까지 다 주위에 있으니, 나는 이미 런던에 와 있는 것 아닌가? 거기 가서 새로운 실망감 외에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 끝에 그는 분연히 일어나 계산을 하고 선술집을 떠나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첫 기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집을 떠나지 않았다.

2. 파괴를 위한 여행

지난 주 뉴질랜드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크라이스처지에서 큰 일이 일어났다. 28살의 호주 청년이 자동소총을 난사하여 50명을 죽였다. 세상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다른 곳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에서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테러리스트는 그것을 노렸다.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망가뜨리면, 온 세상이 주목하며 자신의 메니페스토(선언문)에 귀 기울여 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동조자들을 모아 그들만의 세상을 세워보겠다는 생각. 
그래서 그는 머리에다 카메라를 매달고, 학살 현장을 온 세계에 생중계했다. 그런데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사건은 일으켰지만, 그 사건에 대응하는 뉴질랜드가 그의 기대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제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말한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과 그가 한 끔찍한 일들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이 그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하다. 큰 박수를 뉴질랜드 총리와 국민들에게 보내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그 테러리스트에 관해 좀 더 알아본다. 
그는 호주 NSW 북부 그라프톤 출신이다. 그곳 피트니스 클럽에서 매우 헌신적으로 일하던 트레이너였는데, 그가 어찌하여 그런 광폭한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친지들은 말한다. 
“그가 여행하는 동안 변한 것 같다. 유럽과 아시아, 파키스탄과 심지어는 북한도 다녀왔다” 
오호! 정말 안타깝다. 서두에 언급한 데제생트 공작처럼 여행 계획은 세웠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온 세상을 여행하며 본 것은 인종과 민족들이 섞여지면서 일어나는 갈등과 폭동, 그리고 전쟁이었다. 그런 부조리를 끝내 보겠다고, 스스로 총을 들었고 결국 자신도 망쳐버렸다. 그 여행 때문에.

3. 화해를 위한 여행

이번의 그 테러리스트가 주적(主敵)으로 언급한 사람이 터키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무슬림이 대부분인 자국민들에게 형제들 죽음에 대한 응징을 공약했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뉴질랜드는 외무부 장관을 터키로 보내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고 필요한 사과를 하기 위해 간다. 이제 4월 25일이면 안작데이(ANZAC Day)를 맞아 수천명의 호주인/뉴질랜드인들이 갈리폴리 차나칼레 해변으로 순례 여행을 떠날 텐데, 그곳에서 이번 테러에 상응하는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임무를 부여받고 떠나는 외무장관이 만약 4월 5일 이후 터키에 도착한다면, 그가 탄 비행기는 이번에 새로 완공된 이스탄불 공항에 내릴 것이다. 지금 현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항이다, 
물론 4월 25일 행사에 참여하려는 호주와 뉴질랜드 순례객들도 그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 모두의 손과 가슴에는 빨간 꽃이 들려져 있을 것이다. 그 꽃은 다름아니라 그들의 조상이 1915년 터키군의 총탄에 숨져 쓰러졌을 때, 그 땅에서 피어난 빨간 양귀비 꽃들이다. 

그렇게 세월은 모든 불의와 원망을 삼키면서 새로운 시대를 일으킨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위대한 것은 시작과 지금이 다르다는데 있다. 처음에는 제국주의 식민지를 위한 약탈로 시작했지만, 100년을 넘기면서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상들의 죄를 피로 씻어, 자유/평등/박애의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물론 호주원주민에 대한 속죄의 길은 아직 멀지만, 나름대로 세계평화를 위해 젊은이들의 붉은 피를 바쳐왔다. 1861년 이후 세계평화를 위해 102,825명의 목숨을 바쳤다. 평화는 그렇게 순교자의 피 위에서 피어난다. 
그런 평화를 위한 여행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여행이 꼭 비행기를 타야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번 크라이스트 참사 현장에 피켓을 들고 나온 그곳 시민들의 사진을 보았는가?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피켓을 들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This will not divide us / 이 정도의 것으로 우리는 분열되지 않아요!”.
 
이들을 보면서, 나의 조국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삼일운동 백 주년이 지나간다. 그러니 이제는 너무 과거사에 연연하지 말고,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어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한권의 책을 꺼내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일곱 번 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라.”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