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 오는 길에 책 방에 들러 책 몇권을 샀다. 그리고 베스트 셀러들을 모아 놓은 코너에서 읽지 않았던 책도 눈에 띄어 서너 권을 손에 집어 들었다. 그 중 한 권은 벌써 유명해 진 ‘한강’ 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채식주의자’라는 책이다. 2016년에 세계 3대 권위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베스트셀러로 정평이 난 책이다. 
명성답게 책은 첫 장을 들추자 곧 그 이야기의 재미로 순식간 빠져들게 하였다. 스토리는 주인공인 한 젊은 여성의 결혼 이야기로 전개된다. 평범하고 아무일 없는 듯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 속에서 배우자의 인식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한 여성의 생동하는 내면의 이야기이다. 
왠지 음울하면서도 거짓되지 않은 절실함과 진정성이 공감을 떨칠 수 없게 하고 비밀스럽게 발전되는 내면의 호기심과 숨죽이 듯 커져가는 육체적인 욕망의 갈증은 독자의 촉각을 자극하고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급히 넘기게 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여러 번 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멋대로 분출되는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야하는 피할 수 없는 어린 마음은 반발하고 대들기보다 수용하고 죽은 식물처럼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나 보다. 입안에 가득 씹혀지는 고깃 덩어리 같은 인간의 세속과 탐욕의 실체를 알게 된 그녀는 식물외에 다른 것을 삼킬 수 없는 정신 구조가 되었는 지 모른다. 마음의 상처는 결혼 생활에서도 아물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고, 무료함과 무관심으로 일관된 살기 급급한 일상은 세월만 오래 쌓이게 한다. 
주인공의 삶의 공허함과 마음의 상처는 채식을 고집하는 심각한 거식증으로 발전하였다. 딸의 건강을 우려하던 아버지는 강압적으로 음식을 주입하려했고 급기야 손찌검으로 그의 화를 다시 분출했다. 그녀는 그 때 칼로 자신의 손목을 자해하고 병원에 입원하며 부모와의 관계 뿐 아니라 남편과도 헤어지는 계기가 됐다. 형부의 처제에 대한 묘한 관심은 화가로서의 호기심과 육체적 욕망으로 발전하고 처제와의 육체적 관계는 아내가 목도하는 현장의 사건이 됐다. 형부와 언니와의 부부 관계도 깨어지고 급기야 정신병동에 들어간 주인공은 끝까지 그를 보살피는 언니의 애처로운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은 세상에 평화를 주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그녀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읽는 내내 인생에 대한 씁씁한 연민과 인간 관계의 보잘 것 없는 허무한 속성을 인지하게 한다. 어떤 면에선 겉으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고 살아가도록 알맞게 포장된 겉 모습 뒤에 비밀스럽고 속된 성적 지향적 속성과 상처 입은 나약한 내면의 갈등을 까발려 놓은 책이기도하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 스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가시화시킨 것 이기도 하다. 
소설 속 여인은 의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인과 관계가 끊어지고 내면의 세계로 자신을 도피시키는 선택을 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을 뿐 아니라 관계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 속에만 존재하는 평화와 안식의 세계로 찾아들게 되었다. 그런 그녀를 모든 사람은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우리는 때로 모든 관계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흔히 유행같은 공황 장애와 우울증과 갱년기와 사춘기를 지나는 때에 우리는 자신만이 아는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들을 경험하곤 한다. 결코 남과 공유되지 않는 시간에 우리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한다. 말없이 조용히 자란 한 인생의 외로움과 무관심은 혼자있는 시간에 더 깊은 우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엘리 위젤이 “사랑의 반대 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 이라고 한 것처럼 주위에 함께 살았지만 무관심은 미움 보다 더한 비극을 자초한 교훈이 담겼다. 

한국의 신문엔 온통 비판과 심판과 정죄로 점철된 활자로 가득하다. 버닝선 사건과 검찰의 비호를 받은 고위 검찰의 성접대 사건과 정치적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모두 비난하며 군중의 권력으로 언론과 사회적 지위의 권력으로, 정죄의 돌을 던지고 있다. 모두 돌을 던지는 사람들 뿐이다. 누구를 감싸면 또 군중의 돌을 맞는다.
군중의 힘으로 덧입혀진 권력에 편승하는 것은 평범한 인생의 또 다른 권리일 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권위있는 어른의 진정한 관심어린 사랑과 평화의 한 마디가 그리운 시대다. 성경 사사기 끝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쓴 것 처럼, 그 시대에도 왕다운 왕을 기대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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