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초 중국인회가 주최한 아시아계 대표자 모임 행사 뒤 찍은 사진. 왼쪽부터 필자 김삼오, 조기덕 전 한인회장, 헬렌 삼 오 전 NSW주 상원의원, 쾅 루 당시 SBS 라디오방송 사장

남북관계가 매우 나빴던 몇 년 전 텔레비전이 비춘 판문점에서의 남북군사회담의 한 장면. 그 회담은 어름처럼 찬 분위기를 녹일 요량으로 가벼운 덕담으로 시작하는 게 관례다. 남측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집 장가를 온 동남아인들로 한국도 다문화국가가 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쪽 대표의 응답이 가관이었다. 그건 조선 사람을 모두 잡종으로 만드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잘 못 꺼낸 게 틀림없다.
 
 호주에서 가까운 남태평양의 한 섬 나라인 피지를 가본 적이 있다. 한 때 영국 식민지였던 이 나라 인구의 40%가 이민으로 들어 와 사는 인도계이다. 가서 알게 된 사실은 원주민과 인도인은 결혼, 학교, 기타 여러 사회 활동 면에서 절대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지는 공항에서 유원지까지 달리는 택시에 미터기가 없고 벨트도 안 매는 그런 나라다.
 
인종과 종교 갈등 
순수 혈통을 내세우는 나라와 발전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유럽 대부분의 선진국은 민족대이동같은 역사적 사건과 지역간 교류로 피가 섞여 이뤄진 나라들이다. 제2차 대전을 일으켜 민족적 재앙을 맛봐야 했던 나치 독일과 일본은 순수혈통을 과시하던 나라들이다.
 
이라크 등 중동 국가들이 인종과 종교 분쟁으로 발전이 저해되어 왔다. 아프리카의 부족 국가 또한 마찬가지. 21세기에 와서도 혈통을 강조하는 나라는 국수주의적이 되어 새로운 전쟁과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하지만 피부색, 언어, 가치관, 생활양식이 다른 민족이 섞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불안의 온상이 되기 쉽다. 50명의 생명을 앗아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난 이슬람사원 테러 사건은 가장 최근의 그런 사례다.  영국의 EU 탈퇴(Brexit) 결정도 상당 부분 대거 유입해오는 아프리카 피난민에 대한 우려가 국민 여론을 그런 쪽으로 이끈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이민과 정치적 피난에 따른 국제간 인구 이동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길도 현실적으로 이 방법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의 거의 40%가 이미 유색인인 앵글로색슨 백인 국가 호주는 세계가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할 다문화주의 실험장이다.
 
호주만이 다문화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둥지를 튼 우리 한인 인구는 현재 15만 명 선, 웬만한 중소도시의 규모이며 가장 눈에 뜨이는 아시아 이민자로서는 중국, 베트남 다음 3위, 4위다. 그 성패가 우리와 후손의 삶을 크게 좌우할 테지만 그 점을 걱정해서 특별히 우리가 하는 게 없다. 다문화주의의 진실이나 실제에 대하여 아는 것도 없고, 실천은 더더욱 아니다. 다문화 행사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너무도 초보적이다. 
 
 다문화 정책의 핵심은 아무래도 인종차별 이슈가 아닌가 싶다. 이놈의 인종차별 논의 또한 쉽게 하지만 개선을 위하여 우리가 해온 게 별로 없다. 알다시피 호주 정부 정책이나 제도상 인종차별은 없다. 우리 자녀들이 높은 HSC점수를 받았으나 한인이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못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 우리 노인들이 한인이라서 노인연금 수령이나 공공 병원 이용에 차별을 받는 일이 있는가? 대부분 인종차별은 사생활이나 법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청소년들이 우리 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 친다든가, 자녀들이 학교에서 아시아인이라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참담한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호주에는 이런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간헐적이고도 음성적으로 일어나는 타인종에 대한 무례나 불법에 대한 구제를 위하여 일일이 변호사를 고용하고 법원에 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몇 주 전 동포 신문에 실린 한 교민이 당한 인종차별 경험담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그는 사직 기관에 구제책을 호소한 것 같은데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대안은 분명해 보인다. 태어나면서 인종주의자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또는 성장하면서 배운 특정 이민자 그룹에 대한 호불호 정서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가령 그들이 어느 특종 이민자 집단을 모범 또는 1등 시민 집단으로 높이 평가한다면 자연히 그에 대한 대접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겠는가. 나 개인의 경험만 해도 그렇다. 어느 민원 사무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머리 속에 영어를 잘 정리, 조리 있게 말 하고 예의 있게 대할 때와 아닌 때 상대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하루 아침에 영어와 매너를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나 해법을 그런 쪽에서 찾아야 하지 인종차별 구호로만으로는 안 된다.  흔한 우리의 대중강연이나 단체 모임에서 그런 문제가 논의되는 걸 못 본다. 정치 참여만이 대안은 아니다. 한인 몇 사람이 연방이나 주 의회에 입성했다고 인종차별 정서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버센스인지 몰라도 현재 주류 사회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될 수 있는 대표적 소수집단은 통합이 잘 안 되는 소수민족(the least assimilated group)으로 찍힌 차이니스와 코리언이 아닌가 싶다. 한인은 중국인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편이지만 호주인들은 두 민족을 잘 구별 못한다. 아랍 커뮤니티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혐오 대상이 되지만 그건 다른 차원이다.
 
 차이니스가 어째서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많다. 최근 대거 들어와 사는 그들은 순전히 중국 본토식이다. 오리 고기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이스트우드 가게를 찾아 갔었다. 고기를 썰어 담은 컨테이너 통을 포장하다가 아무 소리 없이 다른 쪽에 가버렸다. 한참 만에 와서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문을 잡아 주거나 안에서 비껴주어도 땡큐 한마디 안 하는 사례는 다반지사다. 이건 무례지 다문화가 아니다. 그런 매너를 좋아할 사람 어디 있겠나? 심성이 나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반인종차별 운동은 투쟁보다는 주류 사회로부터 호감을 받는 집단이 되는 자체 내 운동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주류 매체의 오피니언 지면에 대한 기고 등을 통하여 주류사회에 이민자의 애로와 자구 노력을 알려 이해를 구하는 온건하고 차원 높은 접근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4, 5세대를 내려온 차이니스 커뮤니티지만 수준 높은 칼럼니스트가 나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중국인회
양 커뮤니티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하다. 여기에서 지나간 이야기 하나를 꺼내야겠다. 1989년 초로 기억된다. 우리의 한인회격인 The Chinese Australian Communities Association of NSW(중국인회라고 부르기로 하자)에서 초청이 와 당시 조기덕 시드니 한인회장과 ‘호주소식’ 신문을 하던 내가 헤이 마켓에 있는 회관을 찾아 갔었다. 모임은 아시아계끼리의 공조 방안을 토의하자는 자리였다.
 
 둘은 마이크 앞에 나가 발언을 했다. 나는 말을 마치면서 이번 모임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그 뒤 곧 바로 서울에 가 일하게 되어 실없는 사람이 된 게 지금도 미안하고 아쉽다. 그 후 역대 시드니 한인회가 그들과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모른다.
 
금년에 시작되는 제 30대 한인회는 여러 사업 가운데 하나로 한중 커뮤니티 간의 협조기구의 신설 또는 강화를 제안해 봤으면 한다. 협조가 필요한 분야로 먼저 생각나는 것은 위에서 밝혀진 대로 주류사회에 잘 적응을 하기 위한 문화교육 (culture learning)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 커뮤니티에 그런 필요에 대한 인식마저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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