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의 끔찍한 참사 소식을 듣고 며칠동안 정신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평화스러운 곳으로 각인된 그 곳, 그것도 경건하게 기도 드리고 있었던 그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의 강도(強度)는 더 큰 울림으로 내 가슴을 쳤다. 새삼스럽게 도대체 종교는 무엇이며 종교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어리석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다. 우문에 우답(愚問愚答)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릴적 우리 조상들이 개다리 소반에 냉수를 올려 놓고 두 손을 비비면서 소원했던 할머니의 모습과 그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집 나간 외아들의 평안과 우리 집안의 안녕을 바라는 내용이 전부였고 그 자세는 매우 진지했다. 그런 마음은 어느 시대 어떤 민족에게든 공통적으로 적용된 생존을 위한 가장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 후 여러가지 사회적 변화로 인해서 여기 저기서 종교라는 많은 단체가 그럴 듯한 명분을 갖고 결성되었지만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하나됨의 내용은 위에 언급한 생명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기원의 자세였다. 그러다가 어떻게 돼서 종교가 앞장 서서 살상을 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을까? 이런 생뚱맞은 물음에 대한 현답(賢答)을 얻을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명색(名色)이 종교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종교인이 된 인간이란 어떤 존재들인가? 이 또한 간단하게 답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동양의 고전 중에 하나인 주역에서 조차 인생살이는 알 수 없음으로 끝을 맺었다. 360 괘 중 첫 괘는 제법 알 수 있는 듯이 천지음양의 조화로움으로 인한 삶의 규칙 등으로 뭔가 풀어낼 듯 엮어 나가다가 마지막 360 괘에 이르면 알 수 없음의 수화미제(水火未濟) 괘로 마감을 하고 만다. 그 만큼 사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그 삶을 지탱시켜 나가는 중심세력인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조절해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 속에서 종교인과 함께 종교 사상이 생겨났으니 그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것도 각자의 관습과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삶의 터전 역시 상이 (相異)하다 보니 종교의식과 이념 등도 다를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살상과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그 다름을 인정받으려하는 것엔 당사자들 외엔 그 어떤 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에 대한 정의와 생명이 함께 지향하는 안정적 평화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가끔씩 일어나고 있는 종교 분쟁의 불씨는 자기 독선 의식이 그 주된 원인이다. 그 어떤 종교건 독선이 있고 더러는 지도자들 역시 그것을 주창하기도 한다. 그 때의 그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당당한 긍지여야 마땅하다. 그런 생각이 배타적 독선이거나 증오심을 부추기는 그런 악의가 함축된 오직 내가 믿은 종교나 느낌만이 제일이라는 자기 집착이 큰 문제이다. 
그렇게 됨에는 참 진리를 모르는 무지가 제일의 원인이다. 무지가 개입되면 탐심이 발동되고 탐심이 여의치 않으면 짜증이 심화되고 짜증이 굳어지면 증오로 나타난다. 이 단계를 지나면 폭력과 살상이 발생된다. 여기서 이권과 권력이 합세하면 영토분쟁으로 확산된다. 그 배경엔 자신들이 신봉하는 종교이념에서 계시와 깨달음이 있어서 언제나 자신들의 언행을 정당화하려든다. 

이것이 종교의 양면성이며 또한 모순된 행태로 나타난다. 불교 역시 그런 부분이 있다. 참선만 하는 이는 참선만으로 깨달을 수 있지 염불로는 안된다고 그들을 얕잡아 보고 염불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밥만 먹고 틀고 앉아서 졸기만 하면 언제 깨닫게 되느냐고 빈정거린다.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그 도수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그 만큼 선악간에 지속적인 익힘에서 파생되는 자기집착심은 대단하다. 평소엔 멀쩡하던 이들이 어떤 종교에 의지하고 나서 도리어 이상한 언행을 하면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여 대중과 멀어지게 되는 이들을 한국에선 종종 볼 수가 있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는 비유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수나라와 당대(唐代)를 걸쳐 산 많은 선승 중에 단하(丹霞)라는 유명한 선사가 있었다. 그가 어느날 낙양에 있는 혜림사라는 사찰에 나그네로 묵게 되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객실은 차가운 냉골이었다. 그는 대웅전에 올라가서 금색 목불을 들어다가 도끼로 쪼개서 불을 피웠다. 불꽃이 한참 좋을 때 쯤 놀란 주지가 맨발로 쫒아 나왔다. 

“이봐요. 객승, 불상을 쪼개서 불을 피우다니 미쳤소?” 
이때 단하가 막대기로 재를 뒤적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불을 화장해서 사리(舍利)를 얻고자 해서입니다.” 
“정신이 나갔소? 목불인데 어떻게 사리가 나올 수 있겠소?” 
“주지스님, 나머지 두 불상도 마저 때 버립시다.” 

그가 그렇듯이 과격한 행동을 보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낙양 일대는 수많은 불교 사찰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복을 빌거나 천도재니 수륙재 등등으로 잿밥에 더 눈이 멀어 있었다. 그가 불상을 불태운 것 역시 그러한 형식 기복주의 불교 신행과 과도한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힌 비불교적인 형태에 대한 경종을 울려 주기 위한 의도된 선종 승려의 행동이었다. 당시의 선승들은 금강경 등의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일체의 불상 등 형식적인 존재들을 부정했다. 그들의 주장은 유•무형적인 권위와 맹목적 기복신앙심을 버리고 그 형상속에 가려져 있는 진실한 부처의 실체를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같은 불교 안에서도 그처럼 하나의 깨달음을 지향해 가는 방법이나 가치 평가가 다르거니 전혀 다른 토양에서 형성된 다른 종교에서의 다름이야 그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 다름을 방치하면서 종교로 인정 받겠다는 부분에선 문제가 있다. 의식(儀式)의 집행 등 외형적인 부분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은 하나됨이어야 종교성을 확보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종교 본질의 이론에 대해서 겉으론 고개를 끄덕이지만 내심으론 우리는 우리 길을 갈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인간은 왜 자기말을 실천에 옮기는 책임을 지지 않는 고등 동물이 되었을까? 
‘처음엔 풀 높이가 같지 않다고 불평을 했는데 풀을 베고 보니 원래 땅이 울퉁불퉁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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