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그렇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고 있다면, 파리 역시 불타고 있다. 파리지앵은 말한다. “우리 모두의 상실”이라고. 그렇다. 프랑스와 파리,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곳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그 상실감에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안심하라. 다 타버리지는 않았다. 천상의 빛으로 인도하던 스테인드 글라스, 십자가의 조각, 그리스도 수난의 못, 그리고 예수님이 쓰셨다는 가시 면류관등, 보물의 80% 이상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석회암으로 만든 기둥과 탑은 그대로다. 역시 바위에서 잘라낸 돌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견고하다.

2. 울룰루

에이어즈록이라고도 부르는 이 바위는 호주 중앙에 있다. 이 거대한 바위의 주인인 원주민들은 ‘지구의 배꼽’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탄생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곳으로 간다. 그 바위의 꼭대기는 해발 863미터인데, 이미 400미터 정도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348미터만 올라가면 된다. 기온이 높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못 올라간다. 이제 9월이면 영원히 등반금지라 하니 더욱 기를 쓰고 찾아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갔고, 보았고, 사진을 찍었다. 돌아 나오며 자꾸 뒤를 돌아 봤다. 사진기에 담아 두느라 미처 보지 바위와 그 뒤의 하늘과 구름을 보고 또 봤다.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사진기를 두고 갈 것이다.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바위와 하늘과 별만 보면서 그 앞에 그냥 앉아 있을 것이다. 또한 보고 감탄하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배꼽 바위에서 탯줄을 찾아, 나에게 연결할 것이다. 바위와 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만날 것이다. 

이 바위가 만들어진 것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5억 5천만년 전이다. 인간의 역사가 만년 되는가? 언어가 만들어지고, 역사를 기록한지가 한 7천년 되는가? 노트르담 성당도 한 850년 되었다는데, 이 정도의 역사가지고는 이 바위 앞에서 입 닫아야 한다. 

호주는 ‘신대륙’이 전혀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다. 이곳은 원래 모래가 덮인 곳이었다. 지각 변동이 일어나 땅 밑으로 들어 갔을 때, 하늘이 누르는 압력으로 모래 바위(사암)이 되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세월이 지났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땅과 바위도 없다. 옆의 친구들은 다 주저앉고 비바람에 씻겨 나가고 해서 다 없어졌는데, 오직 이 바위의 형태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물론 아직도 홀로는 아니다. 이 바위에서 차로 55km 떨어진 곳에는 ‘카타 쥬타’, 반대편으로 140km 떨어져 있는 ‘마운트 코너’가 있다. 이들은 신비하게도 일직선 상에 있다. 사람 눈으론 볼 수 없는 땅 밑으로 연결되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그러나 시간 문제다. 다시 5억 년쯤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이 곳에 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바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돌 조각 몇 개나 볼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며, 난 더 이상 이 바위를 보러 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기와서는 밤하늘을 봐야 한다. 은하수를 만나야 한다. 난 보았다. 동쪽 땅 끝에서 시작해서 서쪽 땅 끝에 걸려있는 이 은하수가 거대한 바위를 반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난 이 밤 무지개를 통해, 언약의 창조주를 만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살았는가를 뉘우친다.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착시현상은, 내가 은하수 밖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구가 은하계 밖에 있는 독립된 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은하수 밖에 있기 때문에,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정말 아니다. 나는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그 은하계를 지으신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 이게 진리다. 때때로 진리는 우리의 오감을 초월한다. 그걸 인정하고 진리 앞에 무릎 꿇는 자는 복되다.

3. 고난과 부활

인간은 정말 하찮다. 지금 세상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가짜 뉴스들을 보라. 그리고 핏대를 올리며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둘 중 하나다. 거짓말쟁이이든지 어린 아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오만하며, 어리석다. 그래서 때때로 문명을 태우는 불 앞에 서고, 거대한 바위 앞에 서며,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절망할 수 있어야 한다. 절망의 깊은 계곡은 오히려 소망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본 사람만이, 신의 얼굴을 바랄 수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창조와 구원의 신은 저 높은 무지개 위에서 당신을 부르지 않는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험난한 길을 먼저 답사하신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내 앞에 서신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난주일과 부활절의 주인공이시다.

예수는 사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란 말이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으로 오셔서, 나를 영원한 존재로 만들어 주고 싶어하신다. 그 일을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 사실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셨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묻는가? 그 실존적인 질문에 난 대답할 수 없다. 다만 성경을 펴서 짚어줄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래서 이제는 수천 억년 전의 나이를 가진 우주의 모든 별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된다. 은하계와 태양계는 물론이고 울룰루 같은 바위는 명함도 못 내민다. 내가 가서 그 바위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가 날 보러 와야 한다. 모든 피조물들은 다만 질투할 뿐이다. 
“다 같은 우주 먼지로 만들었는데, 왜 인간만 그렇게 편애하십니까?” 그래도 할 수 없다. 피조물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단지 조물주 하나님의 거대한 뜻을 찬양할 뿐이다. 그래서 달과 별은 우리를 향해 반짝 반짝하며 절한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고. 심지어는 천사들도 나를 흠모한다. 
나와 당신을 그렇게 고귀한 존재로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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