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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진실 - 최정복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19.05.09 15:38

늦 가을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마운트 윌슨에 다녀왔다. 군밤이 생각나 그곳 농장에서 밤을 사왔다. 알이 굵고 신선해 보였다. 주인은 금년에 수확한 햇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릴에 구워보니 절반 이상의 밤이 변질되어 먹을 수 없었다. 밤의 겉과 속이 달랐다.  농장 주인의 말은 사실이지만,  혹 밤나무 밑에 떨어져 있던 밤알들을 주워서 판 것일까?  상품 선전이며 신문 기사, 어떤  공적인 발표나 사건이 사실과 어긋나거나  꾸민 것들도 있다.  또한 사실이라도 진실이 아닐수 있다.

2004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여성 안내원이, 김정일이 태어난 2월 16일은 겨울이었지만 제비 216마리가 날았다고 했다. 그는 생애 처음 친 골프에서 홀인원 11개를 달성한 세계최고의 골프선수라고 했다. 그녀는 이것을 정말 사실처럼 말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인 것도 많다. 그래도 그녀의 말은 어설픈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저 한 인간을 신의 위치로 끌어 올리려는 우상화 전략의 하나로만 느껴졌다.  북한과 같은  체제 속에서는,  그런 거짓이 사실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로 받아 드려 지는게  당연 할 수도 있다. 이건 나 혼자만의 편견일까?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침몰되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어뢰로 침몰되었다 혹은 미국의 자작극이다 등이 거론 되었는데 현재의 국방장관은 불미스러운 남북간의 충돌이라고 언급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일까?  정녕 그 원인을 밝힐 수 없는 하나의 미스테리한 사건인 걸까?

부모니까  자기 자식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는,  참된 자아와 닮은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정신 메커니즘이  소중히 여기는 기억들과 마음 속 상처와 두려움 등을  계속 지어내고 재작성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우리를 분노케 하며 고통을 주었다고 말한다. 듣는 이들도 쉽게 공감하며 받아들인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그러나 생리학적인 면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고통이나 분노의 원천은 외부의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고 자신의 주관적인 심리적 반응으로 규명한다. 어떤  외부의 상황이 그런 감정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90초정도 지속되다가 스스로 없어진다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로 밝혀졌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그런 감정을 참고, 숨기고, 억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감정에 지배 당하지 않고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태도를 취한다.  짧은 90초 동안의  최초 감정을 심호흡, 물 마시기, 달리기나 명상 등으로 대처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파괴적인 감정의 늪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충동적인 말이나, 행동 등으로  최초의 분노와 고통 위에 계속 기름을 부어 넣는 패턴의 사람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더 큰 분노와 고통의 감정이 자리를 잡고  일주일 아니 때로는 수년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 또한 불편한 사실이다. 어느 것이 더 유익한 진실일까? 

한국의 정치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혼란을 느낄 때가 많다. 오래 조국을 떠나 살아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각 정당이나 단쳬들은 서로 다르고 때로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물론 관심과 시각의 차이에 따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공공 언론들만은 어젠다와 프레임에 따른 사실과 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군사 정권하에서, 한 친구는 ‘진실을 알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통을 안겨 준다’고 말했다. 그때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지만, 그 친구의 말은 지금도 적용되는 것일까? 

조금 더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라  자처하는 미국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주변 측근들의 말을 들을 때 그런 인상을 받는다. ‘그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트럼프의 변호사 쥴리아니의  대통령을 방어하기 위한 반박의 말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가  주장하는 진실을 거짓으로 본다는 말이다. 거짓도 사실이요 진실이다. 다만 관점이 다를 뿐이다라는 말의 유희로 촛점을 흐리고 있다.  과연 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정과 학교, 교회에서도, 거짓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랑이나 우정, 존경이라는 아름다운 말이나 관계속에도  진실이 아닌 경우도 있다. ‘진실은 항상 거짓이라는 경호원을 동반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거짓없는 진실을 갈망한다. 정원의 국화와 동백이 때에 맞추어 꽃을 피웠다. 자연은 정직하다. 흙은 진실하다.  그 꽃들을 대하며 나는 감동을 느낀다.  진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그 진실은 작지만 묵직하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진실 혹은 진리라고 말씀하셨다.  매일의 생활과 만남 속에서,  단순하게  예와 아니오를  말하는 자 되기 원한다. 내가 사모하는 그 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작은 몸짓과  습관이 내 안에  자유함과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직한 바램이지만, 보통  사람인 내게 과연  가능할까?  조금 무겁지 않을까?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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