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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이사 유감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19.06.13 14:46

2017년 10월경이었다. 고스포드의 한 신축 아파트 전시관을 구경갔다.  노년의 단순한 거처를 위해 그 아파트 하나를 계약했다. 금년 5월경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거기에 맞추어 지난 2월말에 집을 팔려고 내 놓았다. 팔리는 기간을 2-3개월 예상했는데 2주만에 팔렸다. 감사했다. 이사 날을 최대한 길게 잡아 5월말로 정했다. 비좁은 아파트 공간에 맞추어 가구와 짐들을 줄이며 이사 준비를 했다. 또한 그림이나 책등 대부분을 주거나 버려야 했다. 그런 일들이 조금 힘들었다. 지난 삶의 추억과 사연들이 깃든 물건 이상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가 2개월정도 늦어져 임시 처소를 찾아야 했다.  쉽게 전세를 생각했으나 최소 6개월 이상의 되어야 한다고 했다.  빈방의 여유가 있으니 와서 함께 지내자고 말하는 고마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사양했다. 짧은 2주간도 아닌데, 각기 다른 생활의 리듬과 방법으로 피차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사 10일을 앞두고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하나는 모든 집기류가 완비된, 테리갈의 한 홀리데이 하우스다. 한 호주 친구가 주인인데 부담없는 가격으로 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 트렁크 하나만 들고 가도 될 듯 싶었다. 다른 하나는 딸의 한 친구가 소유한 아파트다. 딸은 그 친구와 가벼운 대화 중 언뜻 우리의 상황을 얘기 했는데, 그녀는 최근에 아파트 하나를 샀는데  거기서 지내면 좋겠다며, 비용도 그냥 지내라고 했다고 한다. 딸은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금액을 내고 계시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사하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한 이웃은 새집에서 살 때도 하나님의 평화가운데 그 분의 놀라우심과 만지심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카드를 주었다. 옆집에 사는 엔디 부부와 초등학생인 두 딸 알렉산드라와 엘레니가 찾아왔다. 두 딸은 이제 정말 이사 가는냐며 눈물을 글썽인다.  안아 주었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더 격하게 울었다. 이사한 후에도 만나기로 약속했다. 카드를 주어서 나중에 읽어 보았다. 가족처럼 지낸 것을 감사하며, 언제나 친절하며, 수영장을 이용하게 하고, 절기마다 선물을 주고, 골프클럽에 가서 식사를 사 준것,  기타 더 많은 여러가지 이유로 많이 감사하며 그리워 할 것이라고 적었다. 언니는 카드에 글로 쓰고 여동생은 그림을 그렸다. 나 역시 14년간 정든 집이며 좋은 이웃 사촌들과 헤어짐이 서운했다.

이사하던 날 점심 시간에 한 친구 부부가 새 아파트로 찾아 왔다. 짐 나르는 세분의 몫까지 포함해서 도시락과 만두를 사와서 함께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또 다른 친구 부부가 집에서 준비한 육개장과 빈대떡을 가져왔다. 그처럼 따뜻한 친구들이 있어 피곤함이 덜해진다. 아니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 또한 그렇게 좋은 이웃과 따뜻한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사가 힘들었지만 몇 년 후에는 더 힘들 것이 확실하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만남이 중요하지만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덜 복잡한 곳으로 이사가려는 것 자체는 잘 한 듯 싶다. 또 이곳에서 미리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집에 살 때는 문을 열어 넣고 잠을 자거나 외출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느슨한 습관에 젖어 살던 내게는 아파트 생활이 낯설게 느껴진다. 문밖을 청소하다가 실수로 문이 닫혀  안에서 잠기고 말았다.  관리 책임자를 만났으나 안전을 이유로 마스터 키가 없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한시간여 열쇠여는 사람을 기다리고, 뜻하지 않는 비용을 지불했다.  문밖을 나설 때마다 언제나 안전 탭과 열쇠를 가져야 한다.  그것 없이는 승강기, 주차장과 아파트 출입이 불가능한 그런 새로운 습관을 조금씩 익히고 있다.

한번의 이사는 끝났지만 진짜 이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침대와 냉장고, 소파,  필요한 옷과 주방기구 등과 몇개의 화분만을 아파트 안으로 가져왔다. 대부분의 짐들은 박스 그대로 차고 안 스토리지에 쌓여 있다. 이곳은 임시 집이고 머잖아 진짜 집으로 가기 위한  기다림의 장소가 분명하다.  이곳에서 7월까지 지내면 될 줄 알았는데, 어제 변호사를 통해  3개월이 더 연장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끼어 가까운 앞도 잘 볼 수가 없다. 그것은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연상케 한다. 아니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삶의 실상인가!

많은 것을 정리하고 왔지만, 이사 오던 날에도 아파트에 잘 맞지 않아 몇가지 가구들을 또 버려야 했다. 앞으로 박스 안의 짐을 더 과감하게 버려야 되겠다. 물론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선택하고 말이다. 어느날, 이 세상을 떠나 본향으로 이사할 때는 정말 중요한 것들까지도 다 버려야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 아내나 남편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아니 자신의 육체까지 버려야 한다. 그러나 가야할 처소를 모른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고 난감하겠는가! 그날에도 더 확실히 붙들고 선택해야 될 중요한 한가지가 있다. 나를 위해 미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 그 믿음을 통해 약속하신 영생의 소망이다. 이번 이사를 통해서도 그런 영적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감사와 기쁨이 있다.

임시 처소로 이사 한지도 두 주째가 된다. 좁게 느껴지던 같은 공간에서 조금 더 익숙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 거실이며 두 방에서도 탁 트인 밖을 볼 수 있어 시원하다. 바로 앞에 카슬힐 골프장이 있고 그 뒤로는 멀리 블루 마운틴 자락을 볼 수 있어 좋다. 가까운 노웨스트 전철역에서 에핑과 채스우드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이사했던 그 다음날부터 개통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것과는 더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나는 추측도 할 수 없지만,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그 분께 감사드린다.  한 이웃의 바램처럼  평화가운데 그분의  만지심을 경험한다. 그런 인도하심을 통해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그 분을 찬양한다.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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