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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고(故)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 영전에..시드니대교구한인성당 첫 한인 주임신부(91-96년)로 사목
김석환 아오스딩 | 승인 2019.06.20 15:20

호주 한인 공동체와 특별한 인연을 기억하며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 머릿돌

지난 주말(14일) 한 지인으로부터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의 영면 소식을 들었다.

고(故)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은 한국의 대전 교구에서 시드니대교구 한인 성당의 첫  한국인 신부로 부임(1991년 4월~1996년 1월말)해 제 5대 한인성당 주임 신부로  약 5년간 사목을 하셨던 분이다. 

2008년 1월 갑작스런 사고로 병상에 계시다가 2019년 6월 13일 향년 75세로 영면하셨다. 

그 분은 시드니에서  5년동안 많은 애로 사항을 극복하면서 토대를 닦아 놓으셨다. 실버워터 소재의 한인 성전 건립을 준비한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영주권이 없던 교인들을 돕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것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민초기 (1974-76년초반) 시드니 동포사회의  교민수는 천명 미만으로  주말이면  주로  개신교 교회(시드니한인교회)에 모여  예배를 보던 시절에 소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던 곳이  페딩톤 소재 세인트 프란치스코 아씨시 성당(St. Francis of Assist Church, Paddington. 당시 주로 이탈리아계 신자들이 많았다)이었고 6-7가구가 모였다. 당시  교육차 시드니에 머물던 이재문 수녀(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소속)님의 역할이 컸다.  

고(故) 장영식 토마스 신부

그 후 본당 신부님께 부탁을 드려  한인신자를 위한 미사 시간을 배정받아  1976년 루카신부님(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시드니한인 천주교 1대 신부:Fr Luke Pirone)을 모신 것이 시드니 한인 성당의 시작이였다.

시드니  한인 이민자 증가와 더불어 천주교 신자들도 늘어났다.  이에 시드니 이민사목 주교님을 초대하여 애로점을 건의했고 애쉬필드에 착한목자수도회(Convent of The Good Shepherded, Ashfield) 건물 일부를 배정받았다. 한인신자 사목 담당을 콜롬반 수도회로 배정하여 노엘 신부님(Fr. Noel  Connelly)을 2대 주임 신부님으로,  3대는 황 프란치스코 신부님(Fr. Frank Ferrie)을 모셨다. 이곳에서 약 6년 동안 지낸 뒤 수도회 건물 일부가 매각되면서 1984년 콩코드의 세인트 암브로스 성당(St. Ambrose Church, Concord West)으로 이전했다. 이곳에서  4대 경 신부(Fr. Peter Kelly)님을 모셨지만 주차 문제 등으로 주민들과 마찰이 생겼다.  1985년 3월  당시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청소년 직업 훈련소로 사용하던 공소(St. Stanislaus, Silverwater)로  4번째인  현 장소로 이전했다. 

4번의 성소 이전  과정을 겪으며 한인 신자들은 자체 성전을 소망했고 시드니대교구에 현 장소에 한인 성전 건립을 신청했지만 좋은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후 경 신부님이 중국 선교지로  이동 발령을 받게 되면서  새  신부님을 한국에서 모셔오는 방향으로  결정돼 시드니 해외 이민담당 주교님(Bishop Cremin)의 추천으로 한국 해외교포사목 주교회에 신청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전교구로부터 시드니 해외 교포사목자로 1991년 4월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이  5대 주임 신부로  오시게된 것이다.

장 신부님은 시드니에서 첫 미사 강론 중 “저는 시드니에 예수님을 모시고 왔읍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신자들의 염원(성전 건립)을 위해 시드니 대교구장님(추기경)로부터 건립 인가를 꼭 받겠다는 당신의 굳은 ‘믿음 고백’ 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신부님의 결심과 함께 전 신자들의 참여로 1993년 3월  시드니대교구장이셨던  에드워드 클랜시 추기경님(Cardinal Edward Clancy AC)의 허락을 얻었고 약2년 후인 1995년 5월 교구재정부로부터 대출 지원을 허락받았다. 

성전 명칭은 여러 협의를 거처 1995년 9월 시드니대교구 한인 성당의 이름인 The Korean Martyrs and St. Stanislaus Church(한인 순교자들과 세인트 스타니슬라우스 성당)로 승인받았다.

장 토마스 신부님이 1995년 12월 3일 클랜시 추기경님을 모시고  역사적인 새 성전건립 대지 축성식에서 첫 삽을 뜨셨고 한 달 후인 1996년 1월 한국으로 귀국하셨다. 

장 신부님 후임으로 1996년 2월 신상욱 토마스 신부님이 부임하셨고 그해 12월  22일 새 성전 봉헌미사를 드렸다.  필자는 다윗 왕이 성전 건립에 모든 준비를 했고 실체 건축 완성은 솔로몬 왕이 한  성서의 비유가 떠올랐다.
 
15일 신부님을 위한 영결미사에서 본당 보좌 신부님은 추모사에서  장 신부님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삶’에 비유했다. 

영결미사를 마치고 나오며 돌아보던 대성전 모퉁이에  희미한 달빛 아래  머릿돌이 보였다.  그 머릿돌은 클랜시 추기경님의 새 성전 대지 축성 때(1995년 12월 3일)받은 한국성인 기념관 머릿돌이다.  이 머릿돌을 보는순간  성서의 말씀이 섬광처럼  스처갔다.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였나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시편 118,22-23)  

장 신부님께서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하느님 곁으로 가셨지만   우리 민족 신앙인의 자랑인, 한국 순교복자 성인들을 기리는 기념관과 시드니 새 성전은 신자들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주님의 품에서 편히 쉬시 길 기도 드린다.

 

김석환 아오스딩  info@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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