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더불어 어둠이 잠든 7월 하순의 어느 새벽에 필자는 연방 수도 켄버라로 향하는 임대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차창 너머로 시드니의 차디찬 안개가 자욱 하다.

"안개가 내리는군요. 
한 길의 저 끝이, 불빛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먼 주택지의 검은  풍경들이 점점 풀어져가고 있었다."

문득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 작가 김승옥의 ‘무진 기행’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날 시드니의 지역구 리드(Reid)에서 연방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피오나 마틴 의원(Fiona Martin MP)의 첫 의회 당선 연설(maiden speech)을 듣기위해 지역구의 한인 유권자들이 격려하러 가는 길이다. 리드 선거구는 스트라스필드와 콩코드를 비롯 로즈, 뉴잉턴, 어번 등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구다. 최근 총선에서 자유당과 노동당 후보들의 박빙 대결로 당락이 결정되면서 한국계 유권자들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번 행사는 LFK(Liberal Friends of Korea, 자유당 한인친선모임)의 양상수 회장(전 어번 시의원)이 40명의 한인들을 초청했다. 

호주 정치 제도는 미국 연방 제도와 영국식 의회주의를 절충한 
내각 책임제이며 연방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원은 의회에 대해 책임지는 행정부를 구성하고 상원은 예산안을 포함, 각종 법률안에 대한 권고와 동의, 거부권을 보유한다.
연방 총선에서는 하원 의석 151석 중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집권당이 되며 집권당 당수가 연방 총리가 된다. 상원은 76석(각주 12명, 2개 준주 4명)으로 하원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날 오전 10시경 의사당에 도착해 복잡한 신체 검색을 마친 후 하원 의사당 방청석에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 때마침 ‘동티모르와의 국경선 협정’에 대해 여야 의원들의 토론이 전개됐다.

호주와 한국의 의사당은 의장석과 의원의 좌석 배치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한국 국회는 권위의 상징인양 의장석이 높다란 단상에 장엄하게 위치하며 의원들은 의장석 아래 중앙 발언대에서 고성으로 발언한다. 마치 선거 유세의 연장인양 가끔 책상을 두드리기도 한다.
이에 반해 호주 의사당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우선 의장석은 한인 교회 목사의 강단처럼 소박하게 책상이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의 발언은 중앙석이 아닌 자신의 의석에 조그마한 책받침을 갖다 놓고 그 좌석에 서서 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언은 시골 교회 원로 목사의 수면제(?) 설교를 연상케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날 낮 12시 정각에 시작된 피오나 마틴 초선 의원(자유당)의 첫 연설을 들으며 필자는 모국의 국회 의사당이 오버랩(overlap)됐다.

필자는 이민 오기 전 한국 국회의원에 당선된 고향 출신인 P 의원의 처녀 연설 원고를 도와 준 적이 있다. 연설 중 가장 어려운 연설이 국회의원의 처녀 연설이라고 경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국회 중앙석에 나와서 의원들을 바라보면 앞이 하얗게 되어 발언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P 의원은 원고에 (물 한 컵 마시고). (책상을 두드리며 ), (좌중을 둘러보고)라는 표기를 했을까?

마틴 의원은 첫 출마에서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여성 의원으로 4명의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정치 신인이다.
이날 방청석에는 마틴 의원의 가족, 동네 이웃들 20여명이 참석 했고 다민족 중에서는 한인들만이 참석해 박수로 격려해 한인 유권자들의 존재감을 스콧 모리슨 총리와 장관들에게 각인시켰다.

특이한 점은 처녀 연설 내용이다. 한국과 달리 주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가정사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면서 방청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발언 중 손을 들어 인사하자 92세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만면에 희색을 띄우며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특히 다민족과 하모니를 이루는 호주를 인도하는데 힘쓰겠다는 공약을 다짐하면서 그에게 중요한 5개 소수민족 커뮤니티를 꼽으면서 코리안은 가장 먼저 호칭했다. 


이런 활동은 자유당은 물론 노동당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호주는 자유당과 노동당이 교차 집권하는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야당과도 교류가 당연히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여당과 야당에게 각각 호의를 베풀면 호주 속의 코리언 인상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 티 파티에서 멜번의 치솜 지역구에서 당선된 호주 최초의 중국 이민자 출신 여성 의원인  글래디스 리우(Gladys Liu, 자유당) 의원을 만나 아시아계의 의회 진출을 축하했다. 
한인 2, 3세들 중에서도 연방 의원 탄생이 현실이 될 그날이 꼭
오리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롭게 언어 소통이 되는 동포 2, 3세 중 
정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은 대학 시절부터 자유, 노동 양당 중
소신에 맞는 정당에 입당해서 청년조직에서부터 봉사를 하면서 이름을 알려야 하며 무엇보다 코리언 커뮤니티에서 검증된 인사가 출사표를 던지면 많은 동포들이 한마음으로 후원을 할 것이다.
한인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곧 호주 주류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가 쌓이면 실력이 된다. 젊은이에게는 실패는 없고 연습이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의 인생에 뚜렷한 고난이 없으면 그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길 잃은 것도 길 찾는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한인 청년들이여! 시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보면서 더불어 사는 것을 연습하고 힘든 이웃을 돕는 일을 명심하면서 뚜벅 뚜벅 걸어가자. 켄버라로 가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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