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엊그제, 교회 어른들을 모시고 크로눌라 비치로 소풍을 갔다. 남쪽나라는 따뜻했다. 이미 봄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20도가 넘는 온화한 날씨에, 바람은 전혀 없고 구름 역시 한 점 없다. 시드니에서 유일하게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 5km가 넘는 길고 폭 넓은 해변은 수만명이 모여도 넉넉하다. 진한 쪽빛 바다 위에 떠 있는 푸르고 푸른 하늘을 가르고 서서히 감속하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1만 5천년 되었다는 50m 높이의 모래언덕 뒤에 숨어있는 공항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하루 종일 여기 앉아 비행기 숫자를 세어보며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다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에는 이런 곳,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유튜브로 중계하면서. 특히 미세먼지와 정치적 난기류에 힘들어 하는 조국의 동포들에게.

현지인들의 옷차림은 겨울나라에서 온 우리들과는 너무 달랐다. 다양한 몸매의 굴곡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기능성 운동복, 그리고 검은색 수트를 입은 수많은 서퍼들. 보드를 꺼내는 차 위에 길게 매달린 흰색 파이프를 봐서는 전기공이나 배관공 같다. 하루 일 일찍 마치고 서핑 하러 나왔나 보다. 그렇게 태양 가득한 바다에서 파도와 놀다가, 학교 가서 애들 픽업하고, 저녁 있는 삶을 즐기는 사람들. 우리는 이상한 별에 잠시 기착한 늙은 왕자/공주들 같았다.

 2005년 이곳에서 호주를 뒤 흔들어 놓았던 거대한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곳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놀고 싶은 젊은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뭘 못하겠는가? 그냥 그렇게 마무리 질 수도 있었던 일인데 매스컴에서 부추긴 결과 인종분쟁 폭동으로 치달았다.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낸 것이 다행이고, 오늘 우리들이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정말 감사하다. 여기가 천국이요 하면서 김밥과 과일을 먹고 예배를 드렸다. 산책하는 현지인들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며 지나간다. 우리들의 평균 연령이 70을 훌쩍 넘기는데 그들에게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이 좋은 곳을 그들과 공유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화 속에는 조국이 있다. 그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답답하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2.
국가는 국민을 잘 살게 해 줘야하는 자생 조직이다. 그런데 여러 국가들이 있다 보니, 각 국가의 이해가 충돌한다. 그래서 총칼을 들고 전쟁을 한다. 전쟁은 사실 승리만 보장된다면 가장 수익성 좋은 투자다. 유럽 안에서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을 착실하게 연마한 서구 열방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시도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고, 미국은 멕시코를 몰아내고 텍사스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차지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합중국을 만들 수 있었다. 러시아 역시 우랄산맥을 넘어 아시아 끝까지 진출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땅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티벳에서 만주까지, 일본은 사할린 밑에서부터 필리핀 앞바다까지 3,500Km를 연결했다. 
그 제국들 사이에 낀 우리 조국은 갈 곳이 없다. 사자 호랑이 곰 고릴라 뱀들에게 이러 저리 튕김을 당하고 있는 쥐 같은 형국이다. 어느 장단에도 춤을 출 수 없는 가련한 신세, 그래서 국민들은 맘 편히 살지를 못한다. 덩달아 이 먼 남쪽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대단히 불편하다. 조국이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하늘 밖에 없다. 2차원을 뛰어넘어 3차원의 블루오션으로 가야한다. 지구의 면적이 514,000,000평방km이고, 한국은 10만이다. 그러면 공중으로 5,140km만 올라가면, 지구만한 면적을 가진 3차원적 존재가 된다. 사실 그리 높지도 않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4,400km이니 1.3%밖에 안된다. 거기 까지만 올라가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다. 달을 지나고 화성과 명왕성을 통과하여 은하수 속으로 진입하면 하나님을 만난다. 3층천에 계신.

3. 
그 전날, 교회 근처 웨스트필드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매일 업데이트하는 글을 써서 온라인에 올리는데 ‘툭’하고 전기가 나갔다. 전 건물이 다 나갔다. 모닝 커피를 주문하러 사람들이 연달아 들어오는데 만들어 줄 수가 없다. 나는 이미 롱블랙으로 진하게 한 잔 마셨으니 그들의 안타까움과는 상관없이, 개점휴업 상태인 매장을 가만히 바라다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생명줄이 이렇게 ‘툭’ 하고 끊어질 수 있다고.
 
이 세상을 유지하는 메인 스위치를 하나님이 ‘툭’ 내려 버리실 수 있다고. 나와 우리의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이 뭐 있을까? 내 앞에 있는 땅이 너무 작으면 마음을 넓히며 살면 된다. 눈을 감으면 높고 푸른 하늘, 쪽빛 바다, 찬란한 태양이 보인다. 거기에서 힘을 받아, 다시 일어나 세상을 살면 된다. 그러다가 또다시 힘이 들면 눈을 감고, 더 높이 하늘을 올라 하나님을 만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이 세상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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