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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엽서] (NZ 여행기 19회)호기심이 발동해 따라가 보았더니 도착한 곳은 공동묘지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 승인 2019.08.15 14:26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시 왕가뉴이(Wanganui)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 로얄(Royal)이라는 영국 냄새가 나는 이름이 보인다.

캠핑장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사과나무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다. 어젯밤은 조금 추웠다. 강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그러나 익숙해진 캠핑카에서 잠은 충분히 잤다. 일단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인 후 아침을 준비한다. 

공동식당에는 외국에서 온 여행객이 대부분이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여행객들과 함께 어울려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인사말 나누는 소리와 음식 준비하는 소리에 식당은 활기가 넘친다. 간단한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커피도 끓여 마셨다.
  
게으른 아침을 보낸 후 시내 구경에 나선다. 중심가에 도착했다. 식당과 가게가 줄지어 있는 빅토리아(Victoria Ave)라는 이름이 붙은 도로를 걷는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에도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로 이름이 자주 보인다. 

도로를 걸으면서 눈길을 끈 것은 이발소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 들어선 큼지막한 이발소다. 요즈음 보기 어려운 빨강과 청색이 어우러진 이발소 사인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실내에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의자들이 늘어서 있다. 오래 전부터 운영된 이발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머리를 깎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발사와 나누고 싶어진다. 옛 모습을 고집하며 이발소를 운영하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세계 1차 대전 참전 기념탑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전쟁 기념탑이 있는 작은 언덕으로 향한다. 언덕 위에 높은 석조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입구에는 1914년부터 1918년 동안 전쟁에 참여한 군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안내판이 있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여한 뉴질랜드 군인(앤작: ANZAC)을 기념하는 탑이다. 

기념탑 내부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본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176개의 계단이 있다. 높이가 104피트라고 하니 32m쯤 되는 높이다. 나선형으로 계속되는 계단을 올라간다. 밀폐된 좁은 공간을 같은 방향으로 돌며 계속 올라가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큰 소리를 내본다. 소리는 울림이 되어 내부를 진동한다. 

탑 꼭대기에 올랐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높은 곳이다. 이곳에도 극성스러운 연인들의 자물쇠가 곳곳에 있다. 시내 한복판을 가르는 강물과 건물들이 보인다. 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심하다. 이 정도 높이의 탑을 세우려면 많은 인력과 물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뉴질랜드 국민들의 군인에 대한 애정을 또 다시 생각한다.  

파산된 배가 관광객의 눈길을 받는 해안

기념탑에서 내려와 가까운 해변을 찾았다. 파도가 심하다. 해변에는 파도를 타고 몰려온 오래된 죽은 나무들로 가득하다. 파손되어 걷기가 힘들 정도의 방파제를 바람과 싸워가며 힘겹게 걸어본다. 뱃길도 위험한 곳일까, 방파제 건너편에는 난파된 배가 앙상한 뼈대를 들어낸 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심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바닷가도 자신만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버지니아 호수(Virginia Lake) 공원

다음날은 버지니아 호수(Virginia Lake)를 찾아 나섰다.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관광 안내 책자에 소개된 공원이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수 입구로 향한다. 수많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정원이 사람을 반긴다. 작은 인공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금붕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 정원이다.

호수를 따라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걷는다. 연꽃이 만발한 곳을 지나친다.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숲을 살피며 새를 찍는 사진사도 지나친다. 호수에는 백조 서너 마리가 물에 몸을 담그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이 걸었지만, 주위에 눈을 빼앗겨서인지 피곤하지 않다.  

캠핑장에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으로 일찍 숙소로 향한다. 가는 길에 큼직한 야채 가게를 만나 들어가 보았다. 야채가 싱싱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아무리 좋은 야채가 넘쳐나도 여행객으로서 많이 살 수가 없다. 그래도 욕심이 생겨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계산대에서 청구하는 금액은 호주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좋아하는 과일과 채소를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캠핑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캠핑장이 가까워지면서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을 가지고 자동차 행렬을 계속 따라간다. 그러나 긴 행렬의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공동묘지다. 장례식 행렬이었던 것이다. 

공동묘지의 규모가 크다. 계획에 없는 공동묘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의 모든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 왕이 했다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말했다는 ‘죽음은 신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이다’라는 말도 생각난다.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만 간직하며 살아도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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