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쪽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길 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비유럽인으로는 한국 순례자가 가장 많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필로, 시로 글을 써 온 시드니 동포 박경과 백경이 다른 일행 2명과 함께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정보들이 있지만 시드니에 사는 두 여인의 눈을 통해 드러날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존의 수 많은 산티아고 이야기들과는 '다른 색깔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교대로 쓰는 '박경과 백경의 산티아고 순례길' 을  3월 8일부터 11월까지 격주로 연재한다. 백경은 여행길을 사진 대신 그림으로 기록했고 그 일부를 백경의 글과 함께 싣는다(편집자 주)

산티아고 길의 여정을 요리한다면?

산티아고 길의 여정을 요리한다면 어떤 음식이 만들어질까? 우선 주인공인 나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조리 시간은 30여 일.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햇살과 공기로 간을 하고, 문명의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부재료는 길 위에서 만나는 유기농 사람들을 그때그때 사용하고 간혹 마음이 약해져 간이 짜 질 때는 스스로 살아날 때까지 방치한다. 지속적인 맛의 유지를 위해 매일 20km 이상은 걸어야 하고, 불필요한 지방질과 군더더기는 핏물이 아닌 땀으로 빼낸다. 맛의 깊이를 위해 길 위에서 긴 시간 외로움을 삼켜야 하고, 맛의 풍미를 위해 저녁마다 석양을 바라보며 우~우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며 비움과 채움을 반복한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마을에 먼저 도착해 카페에서 쉬고 있던 K 선배가 나를 보자마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바지 주머니에서 체리 한 움큼을 꺼내준다. 폐가 마을을 지나며 체리 나무에서 땄다고 한다. 나도 서리해온 체리를 배낭에서 꺼내 흔들어 보여주며 말한다. “폐가 마을도 이름이 있을 텐데요? 사람들만 떠났을 뿐이지. 뒷산도 들녘도 고양이도 체리 나무도 마을에 그대로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할까요?”

산동네 마을 라 파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언덕 위의 마을은 막상 올라가 보면 삶이 척박한 것을 목격한다.

체리를 먹으며 듣고 있던 K 선배가 말한다. 자신도 한때 마음이 닫힌 폐가였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교직에 있었던 그는 수업 중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아 평생 몸 담았던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고. 갑작스럽게 닥친 삶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을 외면하고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의 입 모양을 보며 소리를 듣는다며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줄어 한편으론 편한 점도 있다고 덧붙인다.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서양 순례자가 우리 테이블을 향해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왔나요?”“네팔?”하고 묻는다. 설마 나한테 묻는 건 아니겠지 하고 K 선배를 바라보는데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며칠 전에는 중국에서 왔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엔 네팔. 햇볕과 바람이 바꿔놓은 국적. 문득 서쪽으로 난 풍경 속으로 계속 걸어가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숲을 통과한 후 셀 수 없이 많은 마을을 지나, 포르투갈 시인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가 말했던,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그 곳, 호카곶(Cabo da Roca)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페루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으며 심장이 뛰고 있는 ‘나’를 만나고 싶다. 

안개와 비 바람이 심한 산동네 마을, 라 파바(La Faba). 멀리서 보기에 아름다운 언덕 위의 마을은 막상 올라가 보면, 비. 안개. 구름 등의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에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삶이 쉽지 않음을 목격하게 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가축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골목 입구에서부터 소똥과 오줌이 뒤섞인 냄새로 인해 코를 틀어막지 않고는 길을 통과할 수가 없다. 검은 장화를 신고 냄새나는 분비물을 철퍼덕 철퍼덕 밟으며 소 떼를 몰고 언덕을 올라가는 노인. 90살은 족히 돼 보이는 그의 선한 얼굴에 바람이 새겨준 고랑이 깊게 패어 있다. 

사리아(Sarria)에 들어서자 순례자들이 부쩍 많이 보인다. 산티아고까지 약 120km를 남겨놓은 도시다. 짧게나마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순례길을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 걸어도 순례자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게 안에는 처음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조용히 지도를 펼쳐보며 내일 일정을 계획하는 기존 순례자들이 섞여 있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숲길에서 순례자들이 ‘산티아고까지 100km’.돌맹이 사진을 찍고 있다.

샤워와 빨래를 끝내고 산책도 할 겸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문이 열린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출입문 끝에 서서 스페인어로 부르는 찬송과 신부님의 알아들을 수 없는 강론을 들으며 영혼없는 미사를 드린다. 갑자기 시선이 정지화면으로 바뀐다. 신자들이 모두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고 제단 앞에는 꽃이 덮힌 관이 보인다. 불쑥 들어와 마주한 죽음.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인연을 맺지 않은 이를 배웅하기 위해 장례 미사를 드리고 있다. 순례길은 이렇듯 가끔 세상의 모서리에 서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낯 익은 얼굴이 사리아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칼로스(Carlos)다. 며칠 전 카카벨로스(Cacabelos)에서 비에르소(Bierzo)로 향하는 길, 그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부엔 까미노를 몇 번 주고받다가 함께 걸었다. 쿠바 사람인 그는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6년 전 와이프와 함께 이 길을 걸었다며 그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왜 이번엔 혼자 왔어요?”그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이 길이 처음이냐고 내게 되묻는다. 

불쑥 들어간 성당, 이 세상에서 어떤 인연도 맺지 않은 이의 장례미사를 드리고 나왔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꽤 오랫동안 다양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도 나도 영어가 제2외국어인 관계로 서로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진심은 서로에게 전달이 되는지 대화가 자연히 쿠바로 흘러갔다. 나는 알량하게 알고 있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부른 첸첸(chan chan)을 들추었고, 그는 정치적인 이슈를 주로 꺼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도 체 게바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이끈 혁명이 결국 국민을 가난으로 몰고 갔고 그 이유로 그도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1995년 쿠바를 탈출했다고 한다. 

쿠바 밖에서 바라보는 혁명가와 쿠바 사람이 바라보는 혁명 그리고 쿠바사람들이 처한 현실. 순례길은 간혹 이렇게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크게는 정치적인 이슈까지 의견을 나누며 더러 내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리아를 출발해 10km쯤 걸었을까. 별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숲길에서 순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오래되어 낡은 돌에 새겨진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까지 100km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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