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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오전의 일, 오후의 삶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19.10.10 12:58

시드니에서 고스포드로 이사했다.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차를 타면서, 아내는 서운하다며 언뜻 눈물을 글썽였다. 30여년 살아 온 도시를 떠나는 감회 때문이리라.  가장 작은 규모의 이삿짐이었지만, 심신의 피곤함은 가장 컸다고 말했다. 손에 익은 물건들 대부분을 주고 버리는 마음이,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더 나이 먹기 전에 이사해서 다행 아닌가! 
한 은퇴 목사는, 줄이고 비워가는 이사가 아름답다며, 생활은 간소하게, 생각은 단순하게, 언행은 진솔하게 살라는 권면이 적힌 카드를 주셨다. 감사했다. 정말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정이 많은 어떤 골프 친구는 왜 멀리 고스포드로 이사 가느냐고 아쉬어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교통이 좋고, 한가한 지역을 택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넓은 집이 필요하지 않고 관리하기도 부담스러워 작은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다. 이곳에 아주 좋은 친구가 있어서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실은80년대부터 알고 지냈던 두 친구가 고스포드와 엔터런스에 살고있다.  그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사후에 연락해 보았더니, 한 친구는 한국에 가서 10월 말경에 돌아올 예정이고 다른 부부는 뉴질랜드에 사는 아들집에 갔는데 다음 주에 온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 이지만 그들 때문에 온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 살다가도 나이 들면 오히려  한국 사람이 많은 시드니로 오는데, 시골에서 외로워 어떻게 사느냐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어른도 계셨다. 그러나 생활 반경은, 얼마간 시드니를 벗어나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주일 예배며  강의를 위해, 또 의사며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등 자주 시드니에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직접 운전하기 보다는 기차를 더 많이 이용하려고 한다. 

잘 아는 한 젊은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전자 공학을 공부한 32세의 청년으로, 교회와 한 선교단체의 미더운 일꾼이었다. 회사에서도 크게 인정받고, 미국과 호주룰 오가며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런데 몇개월전, 갑짜기 암선고를 받더니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 중학교 동창인 한 친구는, 자기보다 7살이나 어린 하나뿐인 남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 깊은 상심 가운데 있다. 모든 죽음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당 할 수 없는 큰 슬픔과 아픔을 준다. 젊은 나이에 혹은 지금까지 일만 하다가 은퇴를 하고 곧 세상을 떠난 자들에게는, 느긋하게 쉬며 삶을 반추해 볼 여유나 기회가 없어 유감스럽다. 아니 인간적으로 너무 안타깝다.

사람은 보통 늙어서, 혹은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의 실상은 어느 누구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베일 저편에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명이 끝났을 때 혹은 해야 할 일이 없어 졌을 때, 죽는다고 믿는다. 마치 성경속의 모세나 세례 요한의 죽음처럼 말이다. 반면에 지금 살아있는 자로써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는 어떤 책임의식을 느낀다. 지금의 내게 그 할 일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선 내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고 단순하게, 감사하며 사는 일이다. 아마 그런 목표대로 살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바램으로 시작하는 하루 하루를 살기 원한다. 지금의 나는 자신의 죽음이 크게 두렵지 않다. 너무 오래 살아 짐이 되는 것보다 적절한 나이에 떠나는 아름다운 작별을 하기 원한다. 천국을 믿고, 주님의 은혜로 그 분 앞에 서리라는 소망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아직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침과 한낮의 일을 끝낸 은퇴자다. 지금은 인생의 오후를 살고 있다. 이전에 중요했던 것들이,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가령 전에는 자녀며, 일, 사람들의 인정 등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인생의 오전에 심각했던 문제들이, 지금은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젊은 날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주었다. 지금의 나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한 내일을, 오히려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으로 가슴 설레며 기다릴 수도 있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불확실한 것임을 삶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한 도시나 같은 집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면 모든 것이 익숙하고 편할 수 있다.  반면에 그날이 그날 같아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편한 집을 떠나 큰돈을 쓰며, 고생하면서 휴가를 떠나거나 낯선 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왜 굳이 그런 것이 필요 할까? 그런 변화와 낯선 곳의 여정에서, 어떤 재충전과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다고 한다. 인생은 짧은 소풍길이라고 했던 한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짧은 인생인데, 익숙한 시드니를 떠나, 조금 낯선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소풍이 아닌가!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긴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 휴가 기간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갓 이사온 작은 도시와 아파트의 여러가지가 아직은 어설프고 낯설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낮은 산등성이들이 편안함을 준다. 집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새로 지은 큰 병원이 있고, 쇼핑센터는 한가했으며 사람들은 조금 더 여유있고 소박한 것 같다. 아내와 함께 지역  골프장의 멤버로 가입하고 한번 라운딩해 보았다. 평범한 코스지만 조용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홀마다 나무 그늘이 많고, 오르막 내리막이 없어 친밀함을 느꼈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가까운 해변을 찾아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고 싶다. 하늘과 바다와 숲과 바람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 새로운 이곳에서 평범한 하루가 새로운 만남들이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아내와 나는 오후의 삶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했다. 어떤 일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원한다. 분주함 대신에 쉼을 즐기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새로운 에너지를 느꼈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조금은 외로운 시간도 필요한 줄 안다. 그런 때에는, 주님과 함께 흩어진 과거 삶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가며, 그 분 은혜의 손길을 경험 할 수도 있으리라. 내 자신을 새로 만나고 발견하기 원한다. 어디에 살든 문제들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매일 작은 것에서 감사를 선택하리라 다짐한다.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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