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주요 언론사들이 한데 뭉쳤다. ‘공익보도(public-interest journalism)’ 역할을 보호하기위한 개혁(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연대했다. ‘알 권리 연대(Right to Know coalition)’란 이름으로. 물론 칼자루를 쥔 스콧 모리슨 정부가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이 연대에는 공영 방송인 ABC와 SBS, 나인(Nine), 뉴스 코프(News Corp), 더 가디언(The Guardian) 그리고 기자노조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예술 연대(the Media, Entertainment and Arts Alliance)가 참여하고 있다. 사실 상 호주의 주요 언론사들은 대부분 참여하는 셈이다.  

이 연대가 보여준 첫 움직임은 10월 21일(월)자 ‘신문 1면 검은(먹물) 편집’이었다. ‘보도금지’라는 빨강색 검열 도장이 찍혔고 기사 내용은 전부 검은 줄로 삭제됐다. 그 아래로‘정부가 당신에게서 진실을 알리려 하지 않을 때 그들은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가?’라는 문구가 달렸다. 마치 1974년 박정희의 유신독재 시절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를 연상시켰다. 그 그림자 뒤에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어른거렸는데 호주에서 2019년 이런 현상을 걱정해야 하다니.. 
 
경쟁사들 사이의 전례가 없는 이같은 연대는 호주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항하며 언론 자유에 대한 보다 강력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정부나 대기업 등 힘이 센 단체들이 위법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하는 호주 기자들은 ‘비밀주의 관행’ 확산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호주의 명예훼손법(defamation laws)은 언론사 재갈물리기 목적으로 자주 남용되면서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6월초 호주 언론계를 경악시킨 2건의 압수 수색이 진행됐다. 
#1. 6월 4일 호주연방경찰(AFP)이 뉴스 코프(News Corp)의 애니카 스미서스트(Annika Smethurst) 정치부 기자의 켄버라 자택을 6시간 압수 수색했다. 2018년 4월 기사 때문이다. 이 기사는 전자첩보기관(감청국)인 호주신호국(Australian Signals Directorate)이 국내 첩보 활동을 확대했고 정부 안에서도 우려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6월 6일 뉴스 코프 신문사에 대한 추가 수색이 예고됐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2. 6월 5일 연방경찰 수사 요원들이 ABC 방송의 시드니 본사를 방문해 압수 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2017년 아프가니스탄 파병 호주 특수부대원들이 관여된 위법 행위(전쟁 범죄, war crimes) 폭로 방송 때문이다. 방송 기자와 PD 등 여러 명의 컴퓨터를 수색했고 자료를 압수했다. 한 주 전 군법무관이 관련 (기밀) 서류를 ABC에 제보한 협의로 재판 회부됐다.  

AFP의 충격적인 언론인 압수 수색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비밀주의와 법적 제재를 노골화한 행동이었다. 경찰은 내부고발자와 기자들을 위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사들과 야당 의원들이 항의와 우려를 제기하자 스콧 모리슨 총리, 피터 더튼 내무장관, 크리스천 포터 법무장관 등은 “경찰의 압수 수색은 국가안보 보호를 위해 독자적 결정된 직무 수행이었다”라고 옹호했다. 야당의 요구에 마지못해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강경 보수 성향의 연립 정부는 내부고발자 보호 등 언론사들이 요구하는 관련법을 개정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헌법학자 조지 윌리암스는 “2001년 9.11 이후 호주 의회에서 무려 약 75회나 국가안보법이 통과됐다. 이는 선진국 중 언론 자유를 제약하고 비밀주의를 특히 강화시킨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주의 ‘알 권리 연대’는 시급하게 필요한 개혁 조치로 6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수색 영장 이의제기 권리 보장,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 비밀주의 제한, 정보의 자유(Freedom of information: FOI)법 개정, 기자 예외 조항(Journalist exemptions: 여러 국가안보법 상 기소에서 기자를 보호하는 예외 조치) 신설, 공익 저널리즘 차원에서 명예훼손법 개정이 미디어가 요구하는 내용이다.

호주의 내부고발자 보호는 매우 미약하다. 2018년 페어팩스 미디어와 ABC 포코너즈(Four Corners)는 공동 탐사보도를 통해  ATO 내부고발자 리차드 보일(Richard Boyle)의 제보를 토대로 국세청이 납세자를 잘못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66건 혐의로  기소된 보일은 161년형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언론사가 제안한 개혁안과 관련, 의회와 지역사회 일각에서 ‘왜 언론인들이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가(why journalists should receive special treatment)’라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언론사들은 공익보도에서 기자를 보호하는 것이 법위에 있도록 하는 것(make them above the law)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정치인들의 의회 면책 특권(parliamentary privilege), 의료진-환자 사이의 비밀(confidentiality) 준수 등 사회에는 여러 예외가 있다. 이런 예외와 균형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처럼 공익보도가 보호를 받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호주의 언론자유는 국제 평가에서 양호하지 못하다. ‘국경없는 기자들(Reporters Without Borders)’은 2019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호주를 전년도보다 두 단계 하락한 21위로 평가했다. 이 단체는 호주에서 탐사보도가 법의 횡포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국제 감시기구인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호주는 강력한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언론체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호주의 언론자유 보호는 다른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취약하다. 미국은 헌법을 통해 보호를 받는다. 영국은 인권법이 언론자유를 명시적으로 보호한다. 이 두 나라는 또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기자들을 보다 강력하게 보호한다. 반면 호주에서는 저널리즘과 표현 자유에 대한 강력한 보호조치가 없다. 호주는 세계에서 ‘명예훼손의 수도(defamation capital of the world)’란 오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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