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큰 가뭄에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진다. 식수 부족과 산불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럴 땐 까닭없이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은근히 짜증이 난다. 사람도 가뭄을 타기에 그렇다. 목마르면 물만 채워주면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만물은 수분과 온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안정을 느끼면서 잘 자란다. 
요즘엔 여린 고추 모종에 물을 자주 주어도 싱그럽지 못하고 노약한 이들이 가뭄이나 장마 때에 더 힘들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때에 더욱 신경을 건드리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매미들의 떼창이다. 본인이 머무는 곳은 640M고지의 산중이라 그 요란함이 더욱 심하다. 특히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합창을 해대니 밉상을 더 받는다. 한국의 매미는 맴맴하면서 멋을 부려 우는데 비해서 이곳의 그들은 찌르르하면서 악을 쓰듯이 소리를 내어 지른다. 그런 그들도 땅 속에서 수 년을 숨어 지내면서 딩군 나머지의 변신의 울림이라하니 마냥 짜증스럽다고 하기에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위키 대백과 사전을 더듬어 봤다. 이 세계엔 3000 여 종류의 매미가 살고 있는데 주로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북쪽과 아시아 온대 지역에 많이 서식한단다. 그들은 성충이 되어 높은 나무 위의 두꺼운 껍질 속에 알을 낳아 유충이 되면 나무 아래로 내려와서 땅 속으로 들어간다. 약 30 cm의 그곳에서 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즙이나 흙 속의 양분을 흡수하면서 굼벵이로 지낸다. 거기에서 3, 5, 7, 15, 17년의 주어진 시간을 보내면서 기다리다가 날개가 생겨서 날 때가 되면 살금 살금 땅 위로 올라온다. 한국의 매미는 5년 주기로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아마 호주의 매미는 탄생 주기와 토양이 달라서 모습은 비슷해도 우는 소리가 다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공통점은 주로 홀수 해에 많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까닭은 천적의 개체가 적은 해를 선택해서 그렇다 하니 생명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날개를 달게 된 매미는 해만 뜨면 힘차게 소리를 내어 지른다. 그것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한 수컷의 종족 번식의 사랑의 노래라고 하니 참으로 묘한 것이 음양의 조화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릴 땐 감나무에서 매매 소리만 들리면 잽싸게 나무에 올라가서 그들을 잡으려고 손을 내어 뻗히면 마지막에 매응응하면서 길게 마침표 소리를 지르고는 오줌을 내 얼굴에 찌익 싸버리고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는다고 목청을 가다듬어 있는 힘을 다 내어 싸인을 보내는데 엉뚱한 인간이 자신을 잡으려고 살금 살금 올라오니 오줌 세례를 퍼붓고는 달아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 달 정도 노래를 하며 돌아 다니다가 알을 낳게 하고는 자신의 일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구르는 재주 밖에 없는 굼벵이가 그 갑갑한 땅 속에서 5년이나 머물다가 하늘을 날아 다니는 날개를 달 수 있는 변신은 그 어디에서 나왔을까? 희망을 품고 인고의 세월을 삭인 생명성의 끈질김이다. 그 속엔 진실과 성실함이 함께 한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만히 스스로의 여정을 거슬러 생각해 보면 굼벵이의 화려한 변신에 버금할 만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 모진 세파속에서도 용캐도 버티며 이 먼 호주까지 와서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진 것이 조금은 적고 부족하더라도 정직과 성실로 일생을 살아온 그 뒷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롭다. 반면에 거짓과 위선으로 인한 그럴 듯한 부와 명예의 축적은 추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중국 당나라 때 백장(百丈)이라는 고승이 있었다. 그가 법문할 때마다 한 노인이 말씀을 듣고 대중을 따라 나가곤 하였다. 하루는 법회가 끝났음에도 가지 않고 서 있기에 백장이 “ 거기 서 있는 이는 누구냐? ” 고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길 “ 사실 본인은 여우인데 둔갑을 해서 사람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오래 전에 본인이 이곳에서 방장(제일 큰 어른) 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법회 때에 어떤 젊은 승려가 저에게 묻길 ‘수행을 아주 잘 하는 승려도 인과를 받습니까?’ 하기에 ‘그렇지 않느니라’라고 대답했는데 그 말 한마디 잘못으로 인해서 500 생 동안 여우 몸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저를 대신해서 한 말씀해 주어서 이 여우 몸을 벗게 하여 주옵소서. 
백장이 대답하길 “대 수행인도 인과를 받느니라.“ 노인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예배하면서 “ 제가 여우의 몸을 벗어 이 뒷산에 두겠사오니 죽은 승려들의 전례대로 하여 주소서.” 이튿날에 제자들을 시켜서 산 위에 올라가니 큰 여우 한 마리가 죽어 있어서 화장을 했다고 하는 얘기다. 백장야호(百丈野狐)라는 이 유명한 얘기는 1700 화두 중의 하나로써 지금까지도 전래되고 있는 것이다. 
요지는 분명하게 모르고 짐작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여우 몸을 받은 것이다. 여우는 의심이 많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요리조리 둘러대는 습성이 심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을 잘 한다고 한다. 늙은 여우가 사람 해골을 뒤집어 쓰고 세 바퀴를 구르면 예쁜 색시로 둔갑을 한다거나 이른 봄에 나물 캐러간 소녀를 유인할려고 백발 노인으로 변신을 해서 오두막에 나타난다는 등의 얘기가 그런 여우의 속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근래에 우리 한국에서 위조 등의 거짓의 의혹이 있는 문제로 인해서 매우 시끄러웠다. 생존 경쟁이 매우 심한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때론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명예와 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을 찾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 집의 경우는 한두 가지나 한두 번이 아니고 너무나 복잡해서 상식이란 기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돌아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 논리에 마음이 앞 선 나머지 두 패로 갈리어 서로 목청을 높이며 반목 질시하는 패거리 집단을 바라보면서 조국의 앞날이 참담함을 느낀다. 
최소한의 양심이 회복되고 일말의 상식이 적용되어 합리적 사고로 인한 통합의 분위기는 이뤄질 수 없는 한국 사회인가? 정당한 변신은 가상하거니와 반칙 둔갑술을 경멸할 그 때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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