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깨달은 기업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표들뿐만 아니라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르는 상표 또는 경쟁사가 미리 선점하면 본인들 사업에 장애가 될 것 같은 상표들까지 보험 차원에서 등록해서 보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상표뿐만 아니라 특허 및 디자인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기술 개발의 속도가 빠르거나 개발의 방향이 어디로 진행될지 모르는 분야에서는 핵심 기술뿐만 아니라 주변 기술, 융합, 복합 기술들을 망라하여 경쟁적으로 지식재산권 확보에 열을 올립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들은 사내 특허팀을 통해 경쟁사의 지식재산권 출원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합니다만, 대기업들조차도 경쟁사 외 타 업종에 속한 업체들의 지식재산권 확보 동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혀 다른 업종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로부터 무시무시한 지식재산권 침해 경고장을 받을 경우 더 당황스럽기 마련입니다.

실제 몇 해전 미국의 통신사인 AT&T가 대형은행인 시티뱅크로부터 “THANKYOU”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을 때 관련자들의 반응은, 은행이 그러한 상표를 보유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시티뱅크는 2004년부터 신용카드업,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한 판촉 서비스 등을 지정 서비스로 해서 THANKYOU 관련 상표들을 하나씩 등록해 왔었고 “CITI THANKYOU”, “CITIBUSINESS THANKYOU” 등이 방대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신회사인 AT&T가 “AT&T THANKS”라는 브랜드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니 시티뱅크의 레이더망에 걸린 셈입니다. AT&T 내부에서는 아마도 상표 서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거나 타 업종인 시티 뱅크의 상표 포트폴리오를 간과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가처분 소송의 결과는 의외로 ‘시티뱅크의 패배, AT&T의 승리’로 끝났는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시티뱅크가 준비를 제대로 못한 채 너무 서둘러 공격에 나선 듯 보입니다.

미국의 상표법상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피고의 상표 사용으로 인해 원고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irreparable harm)가 발생함’을, 일견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증명해야 하는데, 통상 원고 측에서는 소비자에게 혼동 발생 및/또는 그동안 쌓아 온 명성 (reputation)의 실추 등이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시티뱅크가 제시한 관련 증거는 엉뚱하게도 AT&T의 ‘통신’ 서비스에 불만을 제기한 고객들의 코멘트였고 이는 시티뱅크의 상표권이 있는 지정 서비스, 즉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한 판촉 서비스’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과거 시티뱅크의 상표 등록 시 이미 두 건의 유사한 선행 상표들이 있었는데 (“UBS PAINEWEBBER THANK YOU”와 “THANK YOU, NEW SOUTH”), 이 선행 상표들을 극복하기 위해 시티뱅크가 특허청 등록 과정에서 자사의 상표는 특별히 카드업과 관련된 판촉 서비스에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위기를 넘긴 것이, 몇 년 지나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이 자료를 정보공개 신청을 통해 입수한 AT&T 측은 시티뱅크가 펼쳤던 논리를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첫째로 “AT&T THANKS”라는 상표를 통신업과 관련된 판촉 서비스에 국한해서 사용했으며 둘째로 항상 로고 형태로 사용했기 때문에 시티 뱅크의 상표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AT&T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습니다.

호주에서도 Thank You라는 단어가 들어간 다양한 상표들이 출원 또는 등록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THANKQ”, “THANKUBANK”, “THANK GOD YOU’RE HERE”, “THANKS TO YOU” 등 입니다. 그중에서도 아기 기저귀, 음료, 시리얼 등을 판매하는 Thank You Group Pty Ltd라는 회사가 가장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2014년 시티뱅크가 호주에서도 “THANKYOU FROM CITI”라는 상표를 출원해서 심사를 통과했고, STY.Com Limited이라는 회사도 “SIMPLY THANK YOU”라는 상표를 출원했었는데, 이 두 건 모두 Thank You Group Pty Ltd의 이의신청 시도를 방어한 후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2년 구 한빛은행이 우리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할 당시 은행들 간 상표권 분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우리은행이 “우리은행”이라는 행명을 독점하고자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시도했을 때, 시중 8개 은행은 연합해서 특허청에 등록무효심판을 신청했고 이후 특허 법원에까지 제소했었습니다. 당시 특허 법원의 판단은 은행업, 신용카드업 등에서 `우리은행' 상표를 등록한 것은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재무관리업, 재무상담업, 홈뱅킹업 등에서는 상표 등록이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대법원에까지 상고되었는데 대법원은 은행들이 자기 은행을 말할 때 ‘우리 은행’이라고 말하는 관용이 있고, 또 `우리'라는 단어에 대한 일반인의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우리은행이 등록한 상표는 무효가 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우리은행의 상표 등록은 무위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은행이 행명을 다시 바꿔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타인의 상표권을 침해한 것도 아니고 이미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했으므로 한국의 부정경쟁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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