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마운틴 우드포드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신바람이 났다. 가끔씩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카툼바를 찾는 것은 거의 정해진 코스이다. 그 때마다 이런 조용하고 신선한 곳에 작은 기도처라도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이곳 저곳을 힐끔 힐끔 바라보곤 하였다. 그 오랜 염원이 이제 이뤄졌으니 싱글벙글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기차역에서 매우 가까워서 교통이 편리한데다가 거실에 앉으면 저 멀리 푸른 산이 겹겹이 보여서 마치 지리산이나 태백산 어느 산 자락에 와 있는 듯이 느껴져서 더욱 마음을 푸근하게 하여준다. 게다가 정북향이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가 없다. 

그 곳에서 지내길 수 개월이 지난 11월 1일엔 고약한 바람이 쉴새없이 휘물아 쳤다. 마치 어떤 귀신이 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나무 가지를 전후 좌우로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슨 원한이 크게 맺혀서 머리채를 잡고 못살게 굴려는 듯한 그런 느낌의 바람이었다. 오후 2시 경 매캐한 나무 타는 냄새가 났고 주변은 안개가 끼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상하다 싶어서 유리창 너머로 루라 쪽을 바라보니 검은 연기가 뭉게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우드포드에 산불이 났으니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문자 메세지가 떴고 지인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 본인이 바라던 곳에 오게 되었다고 몇 달간 호들갑을 떨면서 부처님 음덕인가 하고 나부됐더니 산불 때문에 피난을 가게 되었으니 호사다마(好事多魔)란 생각이 떠올랐다. 간단한 짐을 챙겨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산불을 걱정하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떠올랐다. 새옹은 시골 노인이라는 뜻으로 그가 기르던 말을 새옹지마라고 부른다. 그는 국경 지역 산골에 살면서 틈틈이 점술 공부를 많이 한 점쟁이로 유명했다. 어느날 그가 애지중지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달아나 버렸다. 그 소문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새옹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렇게 사랑하던 말이 도망을 갔다 하니 얼마나 상심(傷心)이 크십니까?” 하니 “화가 복이 될 지 그 누가 압니까?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노인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 후 몇 달 뒤 사라졌던 그 숫말이 멋진 암컷 백마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또 다시 찾아갔다. “어르신네 축하 드립니다. 멋진 백마와 함께 되돌아 왔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니 “좋은 일 뒤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줄 그 누가 압니까? 너무 좋아할 일만도 아닙니다.” 새옹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그 후 말 타길 좋아하던 그의 외 아들이 그 백마를 타고 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 하나가 부러지고 말았다. 또 다시 몰려온 이웃주민들은 “아들이 크게 다쳤다 하니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하니 “괴로움이 지나가면 즐거움이 다가 올지 그 누가 압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라고 답했다. 얼마 후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입대하면 10명 중 9명은 사망하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아들은 군 면제를 받아서 새옹과 함께 잘 살았다는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 새옹지마의 내용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 뜻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적용시켜서 그 어른처럼 반응을 보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인간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에 따라오는 희비의 감정도 노병에 수반되는 회한의 느낌도 그 모두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크고 작은 희비의 순간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 들이며 살라고 하는 지혜로운 삶의 처신을 그 새옹은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뜻을 되살리려 원나라의 승려 회기는 짤막한 시 한 수를 이렇게 남겼다. 

인간만사새옹마(人間萬事塞翁馬)
추침헌중청우면(推枕軒中聽雨眠)
‘인간의 만사 새옹의 말과 같으니, 
툇마루에서 비오는 소릴 들으면서 낮잠을 즐긴다네.’

이에 본인도 한 소견을 덧붙여 본다. 
‘청산에 살고 싶다 노래 하더니, 
산불이 크게 나서 피난을 하네.
좋고 나쁜 곳 따질 일 아니거니,
지금 앉은 그 자리가 명당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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