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호주를 재건하기 위해 한인들의 역할 고민할 때

스콧 모리슨이 사퇴했다. NSW가 한참 화염에 휩싸인 와중에도 “NSW 주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며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던 모리슨 총리가 그의 지도력 결핍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에 굴복, 결국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이다.
역시 화재 중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고도 사과한다는 발표 뿐 사퇴 요구를 외면했던NSW 응급 서비스 장관도 모리슨 총리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앙에 가까운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휴가를 다녀 온 총리와 장관의 용기가 경탄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실수를 했음에도 멀쩡하게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나라, '참으로 착한' 호주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상상해본 시나리오다. 

한국에 사는 친구가 뉴스를 통해 접한 호주 산불 소식이 믿기지않는다면서 “진짜 이게 실제 상황인가”라고 물어왔다.

또 작년 말 사우스 코스트로 휴가를 떠났다가 갑자기 도로가 폐쇄되고 휴가 지역을 떠나라는 명령에 서둘러 길을 떠나 거의 15시간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한 지인은 "마치 재난 영화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그렇게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안정되고 환경까지 아름다워 세계 각국으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호주에서 이게 웬말인가.

24명이 사망하고 서울의 180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전소되었으며 인간들과 아름다운 환경을 공유했던 5억마리의 동물들이 사라져 버렸다.  또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식처였던 집 또 대대로 이어오거나 어렵게 일구어놓은 사업장을 잃었다. 

호주 날씨는 산불만이 아니라 홍수와 극심한 가뭄 등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이번 여름의 재앙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놓여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9년은 100년 전 기상관측 및 기록을 시작한 이래 호주에서 가장 무덥고 가장 건조한 한 해였으며, 작년 전국 평균 총 강우량은 277mm로 가장 적은 강우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작년 12월 남호주의 눌라보(Nullarbor)는 일년 중 가장 높은 온도인 섭씨 49.9도를 기록, 이전의  최고 폭염기록을 깼다.

올해 화재를 유발헌 고온 건조한 날씨는 더 강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산불은 앞으로도 훨씬 일찍 시작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기상청의 기후 모니터링 책임자 칼 브라간자 박사는 “화재를 유발하는 날씨가 더욱 격렬해지고 빈도가 높아지며, 더 길어진 산불 시즌이 점점 일상화(new normal)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쟁취하고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으로 보내며 정치 위기 때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한국에서 최근의 호주산불 사태가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도자들의 휴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다가 직접적인 잘못이 없어도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 규명 등 분노에 찬 국민들의 함성이 나라 전체를 흔들었을 것이다. 

대신 이 나라는 관광수입이 주수입원이었던 휴가지 주민들과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들의 신음과 지도자의 무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나마 '천사의 군대'처럼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피해현장을 방문하는 운전사들, 샤워실이나 방과  음식 제공 등 자신이 가진 것을 그냥 내어놓은 풀뿌리 시민들이 있다는 것은 큰 희망이다. 

그런 면에서  이 땅을 제 2의 고향으로 삼았던 우리 한인들이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로운 분노’이지 않을까. 또 그 의로운 분노를 넘어 무능한 정치가를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웠던’ 호주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려주고 물려주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고민할 때다. 

이 땅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아 자녀/ 실업자/ 장애인/ 연금 수당 등 각종 혜택을 받으며 이 땅이 주는 것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이룬 한국인의 그 뚝심과 열정이 이 땅을  재건하는데 귀하게 쓰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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