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트워스폴 가게 주인 “언론 과장 보도로 더 타격 받아”

타 버린 검은 나무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남한 면적(천만 헥타르)을 잿더미로 만든 호주 산불. 지난 10일(금) 산불이 휩쓸고 간 현장인 블루마운틴을 방문했다. 현장 방문을 통해 남한면적 이상을 삼킨 산불의 규모를 가늠이라도 하는 가운데 과연 기후변화가 가져온 위기를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현장이 전해주는 메세지'를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였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블루마운틴은 호주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국립공원 중 하나다. 연중 방문객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평일 오전이지만 방학 기간임에도 산불 여파로 관광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카페나 가게 주인들은 기자 일행의 방문을 반색했다. 

30여년 가게를 해왔다는 캐티는 기자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궁금해하더니 자신의 며느리가 일본계라며 묻지도 않은 며느리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구석에 놓인 값비싼 듯한 스탠드를 가리키며 "오늘 특별히 싼 가격에 이 스탠드를 팔겠다"고 제안해 왔다.

‘전면 화재 금지’라는 안내문과 차량과 일반인들의 통행을 금지하는 표지판.

그는 휴가철임에도 관광객 방문이 저조한 것이 산불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언론이 산불에 대해 너무 확대 보도한 때문"이라며 언론 탓으로 돌렸다. 

늘 인파로 북적대던 웬트워스 폴스(Wentworth Falls)의 인기높은 ‘베이커리 페티스리 슈바르츠(Bakery Patisserie Schwarz)’ 카페도 한산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소방대원과 야생동물 보호관리원 직원이 카페로 들어왔다. 모두의 눈이 그들을 향했다. 구석에 앉아있던 두 명의 여성들은 “끔찍한 산불이다. 당신들은 얼마나 가치있는(valuable)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 매우 감사하고 있다”라며 악수를 청했다. 

블루마운틴 부시장이면서 20여년 이상 자원봉사자로 화재현장을 지켰다는 크리스 반 더 클리(Chris Van der Kley) 소방관은 "이번 산불처럼 어려운 때는 없었다"면서 빌핀(Bilpin)까지 갈 예정이라고 하자 기자 일행에게 엄지를 치켜 세우며 가려는 곳이 블루마운틴의 화재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불에 탄 도로 표지판

그들은 한호일보 취재진의 사진 촬영을 허락한 뒤 동료들을 위해 미리 주문한 미트 파이를 싣고 화재 진압현장으로 떠났다.

인근 블랙히스(Blackheath) 등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벼락맞은 듯한 '검은 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모습이 마운트 빅토리아(Mount Victoria)와 빌핀(Bilpin)까지 이어졌다. ‘나무 장례식’에 와 있나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타버린 나무 밑둥에서 여린 푸른 새싹이 돋아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숲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증거'였다.  

자원봉사 소방대원인 반 더 클리 블루 마운틴 부시장과 동료 직원

일부 지역에 설치된 '출입금지' 표지판이 사람들과 차량의 통행을 막았다. 

산불 피해지역을 달리다가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곳을 발견해 성급히 차를 세웠다. 마침 다른 운전자도 놀라 차를 멈추고  타오르는 연기에 물을 부었다. 여러 도로 표지판에는 타버린 흔적이 남아 주택가 옆까지 산불이 덮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계의 자연 유산인 블루마운틴도 '2019과 2020년 한 해를 건너는 여름 산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정치력의 부재를 보여준 스콧 모리슨이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환경을 잘 지켜내지 못하면 '전 세계인의 분노의 불길'이 우리를 향할 수도 있으리라. 

소중한 자연을 소홀히 했을 때 어떤 재앙이 오는가. 교훈을 주는 방문이었다. 

도로 인근에서 연기가 보이자 한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물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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