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코로나 천국이 되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유별나다. 마스크 대란에다 신천지가 열리더니 금테 손목 시계가 등장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소란스러울까? 세상살이가 복잡하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움은 처음이다. ‘코로나’란 무슨 뜻일까? 이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니 왕관처럼 되어 있으며 라틴어로 왕관이 코로나라고 한데서 이름 지어졌단다. ‘왕관의 모습’이 왜 이렇게도 만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가? 어질지 못한 임금은 백성을 고달프게 만든다. 무지로 인한 탐욕이 괴질(怪疾)을 낳고 그것으로 인해 백성은 불안에 떤다. 그렇다고 마스크만 쓰고 걱정만 하다가 그 고비만 넘기고 말면 언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을 만나야 될지 모른다. 

백신과 마스크를 만드는 노력과 함께 그런 병이 생기게 된 근원을 파악해서 삶의 태도와 마음 씀씀이를 고칠 수 있는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 현상과 결과에만 매몰되어 허둥지둥 대는중생의 삶 속에서 암담한 미래를 예견한다. 구 한말에 이 땅에 살았던 경허(鏡虛)선사는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매우 영리했던 분으로 충청도 공주 동학사 불교 전문대학 교수로 봉직하며 온갖 수승한 대승 경전을 섭렵했다. 

어느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스승을 만나러 가다가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내렸다. 급한 김에 비를 피하려 대문을 두드렸다. 대부분의 집들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드물게 문을 연 주인은 살고 싶으면 얼른 이 동네를 떠나라고 하였다. 지금 이 동네엔 ‘호열자(虎列刺)’란 전염병이 생겨서 집집마다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것이다. 그 땐 콜레라를 호열자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살 점을 찢어내는 듯 고통스럽고 무서운 병이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쫓겨난 경허도 죽음이란 문턱 앞에서 두려움에 휘둘렸다. 그는 벼락과 천둥이 번갈아 가며 치면서 큰 비를 몰고 오는 여름 밤을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새며 큰 시름에 잠겼다. 평소에 생사가 하나라며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큰 소리친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는 밤새며 생사에 따른 불안한 심정과 이론과 실제의 간극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한 나머지 발길을 되돌려 동학사로 왔다. 학인들을 모아 놓고 폐강을 선언한 그는 “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가르친 내용은 전부가 거짓이었다. 마치 배고픈 이가 음식 얘기만 한 것과 같았다. 난 내일부터 불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기 위해서 명상에 들되 그 답을 얻지 못하면 방에서 나오지 않겠다. ” 

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가며 잠을 자지 않고 3 개월 간 피나는 용맹 정진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집에 다녀온 시자가 문 밖에서 물었다. 

“스님, 오늘 집에 갔더니 부모님이 공부 잘 하고 있느냐? 고 묻기에 대충 대충 지나간다고 했더니 그렇게 공부하면 죽어서 소가 된다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된다고 했는데 콧구멍 없는 소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 이 말을 듣는 순간 경허는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깨달음의 노래를 지었다. 

‘홀연히 콧구멍 없는 소란 말을 듣는 순간 
이 세계가 온통 내 집임을 깨달았네
6월 달 연암산 자락에 오가는 이들
그 모두가 태평가를 부르며 한가롭게 노니네 ‘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
六月燕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그는 고함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와 미친 듯이 날뛰었다. “ 콧구멍 없는 소라 콧구멍 없는 소” 
그는 콜레라란 그 무서운 죽음의 인자를 통해서 생사를 극복하여 대 자유인이 된 것이다. 코로나 폐렴을 두려워 하는 것은 결국은 죽음이란 검은 그림자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생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밋밋하게 느끼며 짜증냈던 일상 생활이 얼마나 평화롭고 가치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발병 원인에 대한 깊은 관찰을 동반한다면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된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을 한번 더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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