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카슬힐 호주장로교회 목사,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드니 행동' 소속)들어가는 말

어쩌면 대부분 모두가 공감할 단어들… “이제 그만 좀 해라, 지겹다.” 

그렇다, 또 세월호 이야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난리인데 웬 뜬금없는 세월호냐 할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그러나… 곧 참사 6주기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게, 배가 왜 침몰했는지 그 기본적인 원인조차 밝혀진 바 없다. 6년 전에 박근혜 정권 하의 검.경이 내린 ‘과적’, ‘조타미숙’, ‘불법증개축’, ‘복원성 불량’ 등의 내부요인에 의한 침몰설은 잊으시라. 과학적으로 아니라는 게 이미 밝혀졌으니까. 

2018년에 활동을 마감한 선체조사위원회도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임기를 마쳤다. 이 ‘외부충돌’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은 사실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 글의 취지는 외부충돌이 세월호 침몰사건의 원인임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왜 6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밝히질 않는가… 그 물음이 이 글의 취지다.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고백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있어 진정성있고 간절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공소시효 1년을 남겨둔 올해는 그렇게 추모만 하는 것이 아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모두가 전력투구해 배수진을 쳐야만 하는 시기라는 판단이 든다. 

진상규명을 약속한 자

“세월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 안전한 대한민국, 철저한 진상규명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되는 특별한 법이어야 합니다. 수사권 없는 조사위는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14년 7월 19일, 문재인 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네 가지 대국민 약속을 했다 (1)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2)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3) 그 진상규명이 보장되는 특별법 제정 (4) 수사권이 있는 조사위원회 설립.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이건 2016년 11월 24일, 그가 친필로 써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한 약속이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그러나 그가 한 약속들에 대해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2019년 5월 27일, 대통령 특별수사단을 설치해 전면재수사를 해달라는 24만 명의 청와대 청원에 그가 해준 답변은 “침몰원인 포함 전면재수사를 할 만큼 새로운 증거와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 였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며 책임 회피다.

진상규명을 안하는 자

문 대통령이 언제 세월호 진상규명을 거부했냐고 따져 물을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보기보다 강한 분이니 반드시 진상규명 약속을 지키실 것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공소시효를 보며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 이라고 한탄하는 지지자들도 있고, 자한당(미래통합당)이 해체되어야만 가능한게 세월호 진상규명이라고 말하는 약간 어이없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다.

먼저, 2019년 5월 27일 청와대의 답변을 복기해보시라. 청와대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일명, 세월호 2기 특조위. 이하 사참위)의 조사결과를 더 지켜보자고 했다. 2019년 초에 세월호 DVR 조작 가능성과 관련해 중간발표를 했던 사참위다. 그러나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는 사참위의 조사발표는 의혹제기 정도로 일단락 됐다.

2019년 11월 11일에 발족된 검찰의 뜬금없는 세월호 특별수사단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2014년 당시 세월호 참사를 부실수사로 마무리하고 박근혜 7시간 수사마저 졸속으로 덮어버린게 현 윤석열의 검찰이다. 이런 수사대상인 검찰이 왜 세월호 수사를 자처했겠는가. 다른 꼼수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2020년 3월 6일엔 대통령이 김홍희 신임 해양경찰청장에게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 중에 있는데, 해경은 진실규명에 솔선해서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대체 지난 1년 넘게 사참위가 규명한 진실이 무엇이 있길래 이러한 소리가 나오는가? 해경은 구조방기 수사대상인데, 이들이 무슨 진실규명을 한다는 말인가?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인데, 2017년 7월 17일엔 청와대 내부에서 2박스 분량의 박근혜 정부시절의 세월호 관련문건이 발견됐으나 곧 폐기된 사실이 JTBC 취재 결과 확인되기도 했다. 2017년 촛불정국 때 세월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아는 촛불정부가 이런 중차대한 문건들이 목전에서 파기되도록 내버려뒀으며, 이에 대한 조사나 책임자 처벌도 전무했었다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해 준다.

대통령이 되고 난 직후부터 그의 왼쪽 가슴에서 사라져버린 세월호 뱃지. 그는 세월호 추모식에 총리나 장관을 대신 보내오고 있다. 그는 과연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가? 정말로 하고싶은데 못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을 해드리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역부족이다. 최선을 다 할테니 믿어달라’ 정도의 진솔한 요청 또는 고백을 한 번 정도는 했었어야 한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진상규명에 실패했다고 욕할 유가족들이 아니다. 못하는 것인가? 안하는 것인가? 독자들이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진상규명을 해야할 자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사참위의 조사과제는 14가지나 되지만, 조사위원은 20여명에 불과하고, 조사과제당 한 명씩 할당되어 일한다고 한다. 1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가 없는 사참위는 그 조사역량의 문제만이 아닌듯 하다. 위원들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워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사권, 기소권이 없는 조사위라 하더라도 검찰에게 ‘침몰원인’에 대한 재수사 요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세월호 검찰 특별수사단은 백서를 쓴다는 심정으로 수사에 임하겠다는 출사표와는 달리 처음부터 침몰원인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배가 왜 침몰했는지부터 수사를 해야 진상을 규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외부로부터 어떤 큰 충격이 가해졌는지, 혹여 누군가가 고의로 침몰시킨 건 아닌지, 누가 탈출지시를 막았는지, 왜 선원들만 표적 구조를 했는지, 어선들과 미국 본리처드함의 구조지원을 왜 막았는지, 구조전문 해군 통영함의 투입을 누가 거부했는지, 왜 세월호를 국정원이 관리했었는지, 왜 국가기관들이 세월호 조사와 수사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훼방했는지. 

이 정도만 대충 열거해도, 세월호는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또 실행에 옮겨진 대학살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이걸 다 무시하고 해경의 구조방기만 수사하다 말았으니… 검찰 특수단의 수사는 전면재수사는 커녕, 재수사도 아니고, 그저 추가 수사일 뿐이라는 평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조국 전 장관 사태로 인해 실추된 본인들의 이미지 전환 및 세월호 부실수사로 수사대상인 검찰이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완전히 인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수사단을 발족시켰다고 밖에는 달리 보기가 어렵다.  결국, 검찰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세월호를 수면 위로 꺼내놓은 것이다.

세월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의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2014년부터 수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온 사람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고 줄곧 외쳐오신 그분 말이다. 박근혜 당시 청와대, 국정원, 검찰, 해군, 기무사, 해수부 등 이 어마어마한 국가기관들을 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이라고 많이들 표현하시는데, ‘대통령 하나 씩이나’ 바뀌었다고 해야 옳다. 대한민국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막대한 권한을 오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잘만 사용하면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와 같은 어렵지만 해야만 했던 일도 대통령이 실행에 옮길 수 있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어차피 남은 공소시효도 1년 밖에 안 남았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대통령이 임기 전에 실행해야만 할 운명이다. 그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고, 이는 대통령으로서의 고유권한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진상규명에 대한 약속을 한 사람도 대통령이고,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도 대통령이기에, 그와 그의 정부 행정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관건은… 대통령에게 과연 그런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가는 글

2019년 5월 27일, 대통령 특별수사단 설치와 관련한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답변한 이후, 지난 세월동안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워왔던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은 사분오열 나뉘고 말았다. 사실상,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의 동력 자체가 꺼졌기 때문에 모두가 난파선처럼 나름대로의 방향만 잡고 각개전투를 하는 중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걸 따지는 건 지금 상황에서 그리 중한 것 같지 않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방법론에 있어 어떠한 해석과 주장이 나온다 해도, 결국 공통분모는 하나다. 세월호 전면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안하면 세월호 학살은 아무런 진실도 밝혀지지 못한 채, 범죄자들을 처벌도 못하고 영원히 과거사가 되고 말 것이다. 1년 후면 세월호 학살은 광주 민주화 항쟁처럼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 그리고 수많은 세월호 활동가와 단체들이 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압박해야만 한다. 물론 그에게 나라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산재해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침몰원인에 대해서도 이미 드러난 증거와 정황을 근거로 청와대, 검찰, 사참위, 사법부, 여야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한다. ‘선박 내부의 문제에 의한 침몰’, ‘국가의 과실’, ‘구조실패’와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전면부정하고, 침몰원인부터 수사를 다시 시작하게끔 널리 분명하게 알리며 결사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팽목항에도 추모 현수막 외에 진상규명, 전면재수사, 책임자 처벌을 강조하는 글들이 함께 펄럭이도록 해야 한다. 

3년 전,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적폐청산이란 과제를 수행하도록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다. 세월호 진상규명만 제대로 했어도 적폐청산은 이뤄질 수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은 촛불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별이 된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304명의 고인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촛불 대통령이 될 것 아닌가.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진상규명을 안하고 있으나, 진상규명을 해야 할 유일한 사람.

응답하라 2014 ! 응답하라 대통령의 약속 !!

한준희 (카슬힐 호주장로교회 목사,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드니 행동'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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