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손한순

돌발적인 전 세계적 전염병 재앙으로 그간 잘 듣지 못했거나 생각 못한 개념과 장래에 대한 새로운 예측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 말 가운데 거의 매일 듣게 되어 귀에 익숙해진 하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이다. 이 말은 내가 알기로는 미국 학자(Nira Liberman과 기타)가 10여년 전 심리학 학술지에 올린 논문에서 쓴 게 시발이 된 것이다.
 
내가 이해한 대로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이 개념은 사물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의 관계에서 갖는 심리적 거리감(Psychological distance)인데 이걸 사회적 거리감(Social distance)과 공간적 거리감(Spatial distance) 등 몇 가지로 나눠 통찰한 데서 나온 것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지 몰라도, 나는 이 사회적 거리감을 주로 국민 구성원 간 유대감(또는 응집력, 일체감)을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주로 해석했었다. 여러 나라들을 보면 이스라엘처럼 국민 간 결속력이 강한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이 있다. 취약한 결속력은 구성원간 큰 심리적 및 사회적 거리감의 결과라는 가정이다.
 
한국은 인구, 경제 규모, 군사력 모든 면에서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되게 월등하게 앞서있지만 전쟁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취약한 이 결속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 국민이 결속력은 자율적이 아니고 강압에 의한 것이긴 해도 말이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후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사람 간 최소 1.5미터의 거리 두기는 물론 심리적 거리감과는 무관한 공간적 또는 지리적 거리다.
 
바이러스 확산의 방지책으로 나온 사람 간 거리 두기를 보면서 거론하고 싶은 것 하나는 우리와 다른 영미인들의 기존 신체접촉(Physical proximity) 문화의 차이다. 그건 일상 생활에서 남과 떨어져 있어야 할 물리적 거리, 달리 말하면 각 개인이 쓸 수 있는 공간 또는 영역에 대한 인식 또는 정서인데 저들은 그 차원에서 우리와 많이 다르다.
 
학자들에 따르면, 인구가 과밀한데다가 빈곤한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라면 사람 간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은 좁기 마련이고 서로 몸이 닿는 빈도가 높고 말 소리도 크게 한다. 
 
우리와 다른 줄서기 문화
인구 밀도가 낮고 개인주의적이고 풍요한 사회라면 상황은 대체적으로 반대다. 개인 간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공간은 커야 하고, 신체접촉에 대하여 대단히 예민하다. 말 소리도 작에 한다. 영미권인 호주는 후자, 한국은 전자에 속한다. 
 
여기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뭔가 할 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몸이 서로 닿지 않게 거리를 두고 한다. 함께 걸을 때나 줄서기에서도 가능한 한 서로 거리를 두며, 지나가다 남과 몸이 스친다면 어느 실수가 되었건 “I am sorry”를 연발하는게 바로 그거다.
 
이런 예의는 붐비는 버스 안,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나 기차를 타고 내릴 때와 그 외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모두 그렇다. 저들은 전시장이나 매장에서 앞사람 뒤에 딱 붙어 서지 않는다. 
 
은행 카운터나 민원 창구 앞과 혼잡한 영화관, 행사장 입구에서의 줄서기는 한국과 모두 크게 다를 게 없다. 번호표 장치가 있다면 그대로 따르면 되고, 아니면 비슷하게 줄을 선다. 그러나 여기 카운슬, 도시 외각 마을 지역에 있는 재래식 가게, 아침 일찍 문 열기 전 동네 병원(GP clinic, Surgery)의 공터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는 좀 다르다. 
 
열을 촘촘하게 서있지 않고 여기 저기 흩어져 편하게 앉아 있거나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럴 때도 각자 자기 순서를 알고있고 모를 때는 서로가 챙긴다. 예컨대 불확실하면 “당신이 먼저이신가요?” 하고 묻거나 적어도 눈짓으로라도 확인을 해야 한다. 간격이 비어 있다고 얼른 끼어 들면 실수가 된다. 흩어져 서 있는 고객들에게 직원이 누가 먼저냐고 묻기도 한다. 자기가 뒤라면 “After you”’라고 말하고 뒤로 물러서야 한다. 
 
코로나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도 조금은 저들의 공간 개념과 신체접촉 문화에 가까워져야겠다. 끝으로 한마디한다. 지난 40년간 해외에 살면서 영미권 문화와 우리를  비교한다는 게 어려워졌음을 느낀다. 급증하는 이민 유입과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이 지역이 제3세계화되고 있어 그렇다. 위에서 말한 신체접촉에 대한 이야기도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기 바란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원) skim1935@gmail.com / 삽화 손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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